여론광장
 사람들은 모다 실컨 매마진 것가치 늘신하고 아모려면 엇더랴 하는
 닉네임 : 소련기행  2023-03-08 19:16:14   조회: 40   
1910.9. 이승만


[ ......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등 유럽의 대도시들을 둘러본 다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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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귀국


李承晩이 윌슨 총장 가족과 웨스트 대학원장과 어드먼 박사 등 친지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다음 뉴욕항에서 영국의 리버풀로 향하는 발틱호(S. S. Baltic)를 탄 것은 9월3일, 곧 「한일병합」 조약이 공포된 지 닷새 뒤였다. 李承晩이 미국을 떠나기에 앞서 「병합」 소식을 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李承晩은 귀국하고 나면 언제 다시 출국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귀국 길에 유럽 여러 나라를 잠깐씩이나마 둘러볼 생각이었다. 발틱호로 1주일 동안 大西洋을 항해한 끝에 리버풀에 도착한 그는 런던에서 다시 배로 도버해협을 거쳐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등 유럽의 대도시들을 둘러본 다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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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世一의 비교 評傳 - 李承晩과 金九(22)









1922.3. 모스크바에서 안공근



[ ..... 우리가 현재 받는 대접은 .... 정말 우리의 양심의 가책이 되고 있습니다. ...... ]



[ ...... 기아선상엔 놓인 사람이 약 3,000만 명 .....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일 500만 소비에트 루블 이상이 있어야 ........

...... 소위 전 국무총리와 내각의 전 각료가 이곳에 와서 코민테른 집행위원인 카타야마 센(片山潛)이라는 일본인과 제휴 ........ ]



[ ...... 최창식의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원칙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바 .......

...... 김규식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후보 공산당원이 되었음을 발설하지 말라고 요청 ........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43 43권 서한집Ⅱ > 1920년대 > 142. (번역E) 안공근이 임시정부 전 국무원 비서장 오영선에게 보낸 서한





142. (번역E) 안공근이 임시정부 전 국무원 비서장 오영선에게 보낸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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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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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귀하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내각이 형성되면, 물론 악명 높은 도적들과 악당들은 제거되어야만 할 것이지만, 숨은 도적과 악당들을 인지하고 각료들을 선별함에 있어서 이들을 피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전에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 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김규식과 최창식, 그리고 그러한 부류가 다시금 독립운동에 가담하도록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전에도 지적하였듯이, 그들의 사악한 행동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조심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와 같이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따라서 귀하는 그들 모두가 범한 범죄의 중대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최창식의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원칙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바이므로 새롭게 지적할 필요가 없지만, 이토록 갑자기 출현한 김규식의 공산주의적 경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상해를 떠나면서 김규식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후보 공산당원이 되었음을 발설하지 말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김규식이 공산주의자라니! 전직 내각 각료의 이와 같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모든 우리 민족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이곳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서는 저는 글로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한영과 그 부류의 사람들이 이전에 보고한 내용은 모두 거짓입니다. 만약 귀하께서 그들이 보고한 모든 내용을 그들이 실제로 말한 바와 정반대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귀하는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더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기아선상엔 놓인 사람이 약 3,000만 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일 500만 소비에트 루블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받는 대접은 모스크바에서 최고이자 최상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500만 루블 이상이 듭니다. 그토록 참혹한 상황에 있는 국가에서 그와 같이 생활하고 먹는 것은 정말 우리의 양심의 가책이 되고 있습니다. 조선인들이 그들의 식량을 얻기 위해 돌아다닌다고 생각되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소위 전 국무총리와 내각의 전 각료가 이곳에 와서 코민테른 집행위원인 카타야마 센(片山潛)이라는 일본인과 제휴하고, 그가 한국 독립운동의 향후 계획과 관련하여 위대한 현자인 듯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양심도 없는 사람임이 확실하며, 정말 우스꽝스러운 사실입니다. 최창식은 그와 같은 일이 커다란 영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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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년 3월 22일 신암 (안공근)









1930 모스크바



[ ...... 뭐 멀지두 안어 10환 가젓서 응, 가요. 가지 응?! ....... ]


[ ..... 로서아에는 아즉도 걸인이 만타. ........

걸인도 만치만 걸인에게 돈을 던저주는 사람도 만타. ....... ]



별건곤 제30호

1930년 07월 01일


世界各國 夜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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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斯科夜話

北熊生


白夜, 公園


겨울의 나라 눈 나라의 서울이고 보니 온갖 歡樂은 기나긴 겨울밤을 마자 버러지는 것이지만 아모래도 아득한 지평선을 한계로 속 시원히 퍼진 광야에 두 억개를 눌으는 무거운 슈-바를 버서 바리고 마음놋코 뛰여나와서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잇는 때라야 生氣도 나고 生의 깃붐도 늣기게 된다. 봄이 양념처름 지나가고 뒤를 밧작 따라 여름이 머리를 내밀 때는 南國에서 아즉도 꼿소식이 한창인 4월말 5월초다.


전차를 타면 하이카라에 性빠른 婦女들이 소매 업는 하늘하늘한 여름옷을 걸치고 白雪가치 흰 투실투실한 팔둑을 조곰도 거리김업시 겨드랑이에서부터 내놋코 노리숭한 狐臭를 기탄업시 放散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특이한 腋臭가 서투른 東洋人의 코를 찔너 비위를 뒤흔들어 놋트니 차차 맛터 버릇을 하니 久而不聞其香格으로 그 입분 洋女의 노-란 겨드랑털이 車窓으로 흘너드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한들거리면서 날여보내는 노린내가 나종에는 간열푼 肉慾과 睡氣를 잡어 닛그는 마취제와 가티 후각을 자극하게 된다. 모스크바의 녀름은 이 아름다운 여자들의 겨드랑이가 발산하는 狐臭에서 비릇하는 것이다. 전차 안에 공원에 舖道 우에 이 노린내가 흣터질 때는 발서 녀름이 온 게다. 그러고 녀름이 오면 반다시 벨나야.노-치(白夜)가 따라온다. 이 白夜야말로 짧운 北國의 녀름 한 철 청춘 남녀들의 끗치업는 情話를 담어 사랑을 攝理해주는 愛의 權化요, 애끈는 樂園이라 할가!


사랑의 속살김이 아즉도 끗나기 전에<90> 활닥 새여 바리는 속알지 업시 짧은 여름밤이 서늘한 밤중 두세 시간 동안 잠간 어둠침침해질 뿐인 더구나 짧은 이 나라의 녀름밤 백야가 신통할 게 업다고 하느냐. 아니다 몰으는 말이다!


조름 가득한 별들의 殘光에 훠-ㄴ하니 떠올너오는 첫새벽과 가티 앳구진 밤에 界線을 거두어 업새고 깬 듯 잠든 꿈속 가티 甘美한 피로를 살작 잡어 닛그는 慌怳惚境을 잠 못 이루는 젊은 사람들 압헤 펼처주는 것이 백야다. 공원에를 나가보라! 모스크바의 뒷골목을 슬적 둘너 아렉산돌슬카야, 부리발(公園)이나 뿌-찐콥스카야, 부리발에 발을 돌여 노흐면 위선 오나가나 짝 업는 홀애비 東洋人의 비애를 痛切히 늣길 것이다.


이것을 들으라는 듯이 쪽쪽쪽! 그 충동적 리즘이칼한 키쓰 소래, 키쓰의 爆音!

이 잔띄 저 수풀 사이 꿈결가치 아득한 微光에 싸혀 쌍쌍이 陳을 치고 안즌 남녀의 그림자가 엷운 망사를 통해서 보는 것가티 눈에 띄운다.


그러는 한편에는 짝 일흔 잔내비 가치 무엇을 찾는 듯 貪求의 시선을 훌여 저으며 구석구석을 몰여단이는 濃粧의 婦女들이 잇다. 哀憐한 콧노래에 마치 삿분삿분 떼여 놋는 舞踊的 步調, 誘惑的 嬌態, 뒤를 따르며 시시닥으리는 젊운 勞動 靑年들의 戱言은 들은 척 만 척 미소로 바드며 남자들의 타오르는 肉情의 度數를 가만히 헤아리는 듯이 멀니 떠나지 안코 戀戀히도 근처를 곰돌이 단인다. 客懷의 無聊함을 익이지 못하고. 멋 몰으고 그 서-클 속에 들어서 보앗다. 눈 속에 장화가 푹푹 뭇치는 嚴冬雪寒에도 일 업시 거리를 걸어단이며 굴야-찌(散步)하기 조와하는 로서아 젊은이들이라 안개 속 가튼 하로ㅅ밤 백야를 애로틕한 逍遙에 浪費하는 것쯤이야. 오히려 당연한 여름날의 日課이엿섯다.



「키타이츠!」
나를 中國人이라고 好奇心이 가득한 눈에다 好誼의 미소를 담어 지적하는 여자가 잇다.
「호-자! 춀트워즈미!」(호-자는 中國人을 輕蔑하는 稱呼, 胡子! 귀신이나 잡어가라는 辱說) 샛빨간 다른 입술이 샐눅하고 경멸을 표하엿스나 역시 눈은 好奇의 우슴을 웃고 秋波를 던지는 것이다. 興이 半이나 깨여지고 얼골이 확근하엿스나 굿이 비겁한 것을 면하기나 하려고 압헤서 고개를 돌여 따라 오라는 눈짓을 하는 그것들을 따라선다.


「당신네들허고 좀 친합시다 그려!」
그들의 풍속을 배운 東洋人은 대담해젓다.
「좃치요. 당신 지나 사람?」
「용- 웨 지나 사람은 실어?」
「아니야요. 그저 알고 십허서 그러지」
「얼골이 달너서 그래 물어봣서요.」 또 하나의 변명이다.
「당신들은 딸따리까(韃靻女)이지요.」
「아니야요. 아니냐요! 로서아 여자야요.」
韃靻人이라면 질색을 하는 그들의 성미를 잘 알기 때문에 한번 逆襲을 해보앗드니 효과가 즉시로 낫하낫다. 그들은 韃靻人이라면 아즉도 西伯利亞 蠻種으로 녁이고 잇다. 한나라 사람이면서도... ...

「그래도 내 눈에는 그러케 보히는구먼! 당신들 눈에 내가 중국 사람으로 보히는 것가티... ...」
「거즛말! 그럼 당신 지나 사람 아니냐? 저어 손... ... 약... ...센(孫逸仙) 몰나요?」
「웨 몰나. 그러나 그런 건 아모래도 조와. 자- 나하고 팔 끼고 산보나 좀 합시다 그려!」
「좃치요. 나허고 합세다요」
처음 나를 보고 기따이츠!라 지적하든 여인이 내 엽흐로 썩 나선다. 나는 그의 팔을 멘살 우로 잡고 여전히 공원 소슬길을 건닐는다.
「흥 춀트! 호-자가 로서아 게집애를 끼고 것네그려. 망햇다!」


내 엽흘 스치고 지나는 텁석부리 로서아 중늙은이가 아니꼬웁다는 듯이 침을 탁 뱃고 간다.<91> 침을 탁 벳는 것과 춀트(귀신이란 말)란 입버릇과 두 억개를 치수르는 것은 로서아 인 독특한 표정이요 行習이다.


「怒하섯소. 당신?」
여인은 애수 가득한 눈을 내 코밋해 가저와서 내 얼골을 주시하는 것이엿다.
「아-니 그까진 것쯤이야! 본 바가 업서서 그런걸... ...」
「그래요.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럿치요. 외국 사람을 모욕하는 게 수치인 줄을 몰나요. 인테루나쵸날 정신이 잇다면야 어데 그래요... ... 노여워 마세요 응?」
인간으로서 적막한 동양인의 가삼에는 감격의 血潮가 뛰엿다. 천만군의 응원을 어든 듯 마음이 든든하엿든 게다.


그 입분 상양한 금발 미인을 누이라 할가 애인이라 할가 포도알가티 구으는 푸른 눈알만을 위해서라도 천금을 앗기지 안엇슬 걸... ... 만일 천금이 잇섯든들... ... 그리하야 이러한 공원에 수업시 배회한다는 매음녀의 하나로 오인한 불찰을 스사로 뉘우치고 자책을 하엿든 게다.


「허허허 노한대서야 내가 더 못난이지... ... 그러나 당신 말삼은 훌륭하외다. 어느 학교에 단이슈?」
하고 숙스럽게도 물어 보앗다. 그러나 엇전 일인지 머뭇그리면서 대답을 잘 하지 안는다. 압흘 바라보고 걸으면서 대답을 귀다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니니 羞氣를 먹음은 여자의 얼골이 내 얼골의 동정을 물끄럼이 살피고 잇는 것이엿다.
「괸이 남 놀니지 말어요. 난 학교에 단이지 안어요... ...」
「그럼?」
『뭘 그래 사람두... ... 그러지 말구 우리 집엘 가요 나허구... ... 마차를 불너요.. ... 뭐 멀지두 안어 10환 가젓서 응, 가요. 가지 응?!」
「?」
「그럼 5환은 잇서요. 5환말이야!」
나는 아모 말도 못하고 고개를 엽흐로 저으면서
「다시 맛납시다. 오늘은 학교에서 학생 회의가 잇서서 안되... ...」


여인... ... 그도 결국은 그러한 여자엿다... ... 은 無昧한 듯이 자긔 팔에서 나를 노와주엇다.
나는 다라나듯이 황망히 공원 밧그로 달여 나왓다. 동무의 영업을 방해하지 안으려고 저만치 떨어저 잇섯든 그 여자의 동무들이 나의 뒤꼴에다 노-란 우슴을 던젓다.
「춀트! 가난뱅이 기따이츠!」
「워드카」 「삐브나야」


로서아 사람들이 好酒癖이란 말할 수가 *다. 寒帶地方의 혹독한 冷寒이 엇절 수 업시 알콜의 열과 흥을 찻게 한데서 기인한 것이 안인지. 이럿틋 술을 조와하는 로서아 사람들이 혁명 이후 한동안 금주 시기를 지내오느라 그 생몸부림을 치다가 신경제 정책이 實* 된 뒤로 비로소 국가에서 주류를 양조하야 市場에 내여놋케 되자 老朽酒黨들의 깃븜이란 젊은 사람들의 혁명에 대한 狂悅보담도 더 컷섯다. 정부는 주류 판매소를 내여 거긔서 나는 잔돈푼으로 용돈에 보태여 쓰는 것이다. 帝政 時代에도 술만은 國營이엿고 거긔서 나오는 소득은 촬-의 유일 최대한 용돈이엿섯다. 그리하야 1905년 혁명 당시에 로서아 민중은 제일 먼저 촬-의 주류 창고를 파괴하야 촬-에 대한 復讐를 하엿다 한다.


그러나 국영 주류 판매소는 그리 만치 못할 뿐 안이라 하로 판매하는 양에 한도가 잇슴으로 판매소 문전에는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모혀들어 행렬을 整齊하고 문열기를 긔다린다. 그 列이 도로에까지 뻐더저 나와 가지고 네가 먼저 왓느니 내가 먼저 왓느니 하야 승강이가 생길 때도 잇서 경관까지 나와 행렬을 감시하는 것이다.


한기가 영하 20도를 나려와 입김이 외투 깃에 허엿케 얼어 붓는<92> 일흔 아침에도 나는 트웰스카야 街에 잇는 판매소 압헤서 여러 번 이런 행렬을 보앗다. 여러 시간을 남녀노소들이 찬 공기 가운데서 겨우 워트카(火酒-알콜분 40-%) 한 병을 살여고 긔다리고 섯다가 그만 행렬 중간에서 술이 끈어지고 보면 남어지 後半列은 헛되히 뷘 손 치고 돌아서게 되는 때가 만타. 한껏해야 침을 택 벳고 춀트 .욕토요마-치(제-밀부틀... ...)나 한바탕 늘어놀 뿐이다. 그 중에도 우수운 것은 로인 하나가 압헤서 간신히 워드카 한 병을 사들고 나와 그 자리에 서서 벌덕벌덕 해바리고는 입을 싹 씻고 다시 끄덕끄덕 걸어가서 열 꽁문이에 대어서는 것이다.


이와 가티 엇기 어려운 火酒 대신 到處에 「삐-브다야」라 하야 맥주만을 파는 삐-어홀이 잇다. 酒黨들의 미흡한 주량을 여긔서 채운다. 맥주 외에도 간단한 정식을 먹을 수 잇는 곳이다. 시험삼아 한번 들어서서 위선 방 모양을 살펴보면 천정은 얏고 매연에 그으럿스나 방이 꽤 넓다. 두리 마조 안줄 수 잇는 자그마한 테블이 3,40개는 벌어저 잇다. 테블 우에는 얄편한 대리석을 깔기도 하야 호기로운 맛이 잇스나 의자는 형편이 업다. 손때며 기름이 올나 밋긴하야 안즐가 말가 주저하게 된다.


이 곳 저 곳 테블을 점령하고 잇는 손들은 대개가 노동자들로 헐물이한 양복 주머니에 한 손을 수서 박고 다른 팔굼치로 테블을 집고 맥주를 드리키는 사람 집수제가티 된 컵을 아무럿케나 언저쓰고 醉眼움´ 몽롱하야 뷘 컵을 드려다보고 안젓는 사람 한 손으로 뷘 병을 어루만지면서 다른 손으로 마홀카(설은 담배)를 끄내여 신문지쪽을 뜨더서 卷煙을 말기 시작하는 늙은이들 이러한 사람들이 눈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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乞人


로서아에는 아즉도 걸인이 만타. 옛날 제정 시대에는 더구나 걸인이 만헛섯다 한다. 南露 우크라이나 高架索 지방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업스면 빈민들이 떼를 지어 도회지로 걸인 순례를 나섯고 여자들은 賣淫의 길을 밟엇섯다 한다. 그러고 아즉까지도 그러한 습관이 다소 남어잇는 모양이다.


걸인도 만치만 걸인에게 돈을 던저주는 사람도 만타. 로서아 사람들은 서로 도읍기를 잘한다. 상호 부조의 정신이 남 달니 발달된 것 갓다. 그것은 혁명 당시의 물자 결핍한 때를 지내오는 동안에 생긴 습관인 듯도 하나 그 근원을 캐 본다면 과거 로서아에 전반적으로<93>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하니만치 개인주의가 철저히 로서아 백성들을 지배하지 못하엿든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잇스며 또한 그들의 마음 속에 깁히 뿌리박은 종교심이 그들을 인도적으로 만들어 주엇든 것이다.


그런데 이 거지들은 대개 사원의 門前 -莫斯科만 해도 寺院이 3천여 개소나 된다- 레스토란 쎄-브나야 번화한 市街 지대에다 진을 치는데 그들은 필요에 따라 전차 안에까지 뛰여올은다. 그래도 차장은 못 본 체하거나 빨리 나리라고 순한 말로 일으기는 하나 폭력적으로 끌어내리는 일은 업다.

그들은 大戰에 참가해서 불구자가 된 廢兵들이며 그 외의 불구자도 잇스나 노동하기 실허서 걸인 영업을 하는 놈팽이도 만허서 정부로서도 구조책을 나릴 수 업다 한다. 모스코 街路에서 걸인에게 붓들여 보지 안은 사람은 업슬 것이다. 그 고양이 석는 듯한 악취를 피우면서 60이나 되어 보이는 老乞이 손을 내밀고 딸어스면서 나희로 치면 손자빨이나 되는 나에게 「아저씨! 여보 지나인 아저씨- 일전 한푼만 주시우. 응 여보 일전 한푼만... ....」하고 죽는소리를 하다가 주지 안코 달아나면 그 자리에서 더럽다는 듯이 침을 텍 벳고 「에익! 호-자 귀신 잡어갈 녀석!」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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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소련 나혜석



[ ..... 沿線좌우에는 걸인이 만코 停車場에는 대합실 바닥에 병자, 노인, 소아, 婦女들이 或 신음하는 자, 或 우는 자, 或 조는 자, 或 두팔을 느리고 안진 자, 담뇨를 두르고 바랑을 엽헤 끼고 잇난 慘狀, 露西亞革命의 여파가 이러할 줄 엇지 可히 상상하엿스랴. ........


모스코 市街는 너절하다. 그러고 무슨 폭풍우나 지나간 듯 하야 공습할 길이 업서 보인다. 사람들은 모다 실컨 매마진 것가치 늘신하고 아모려면 엇더랴 하는 염세적 기분이 보인다. ........ ]



삼천리 제5권 제1호

1933년 01월 01일



CCCP, 歐米遊記의 第二


羅蕙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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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伯利亞通過


滿洲里에서부터 동행인은 이러하얏다. 귀족의원 惱田씨(南美 브라질 행) 衆議院직원 松本씨(제네바 軍縮會議 출석 次), 工學士 後藤씨(독일시찰 次), 加藤씨 일행 9인(里海에 빠진 군함중에 잇난 금괴를 건지러 가난 길), 安藤의학박사부인, 堀江고등상업학교 교원부인과 중국인 劉씨 (伯林대학 행), 李씨 夫妻(런던 옥스포드대학 행) 넘어 오래둥안 동행이되니 모든 행동이 서로 익숙하야 진다.


滿洲里에서 여권검사를 맛고 기차는 쏘비에트 연방의 영역으로 드러선다. 창망한 광야를 질주하난 동안 處處에 駱駄의 무리 뿌리여드人의 小屋이 차창으로 보인다. 「오논」河를 건너 칼부이스카<44> 역에 도착하니 일노부터 궤도는 복선으로 되여잇다.


치파 역에 도착하니 午正이나 되엿다. 소낙비가 끈임업시 쏘다지난대 러시아 농민부녀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쓰고 兒孩를 안고서서 승객들이 나와 거니난 것슬 유심히 구경하고 잇다. 이곳은 농산물上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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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 이르면 下衣를 넓게 만히 입고 붉은 수건을 머리에 써 느린 지부스 여자의 떼가 느러 서잇고 어느 곳에 이르면 蒙古人의<45> 무리가 수염을 씨다듬으며 점잔이 서잇다.


정거장마다 그 土地 농민 婦女들이 계란, 우유, 小豚의 蒸燒한 거슬 들고 판매점에서 旅客에게 사가기를 청하고 소녀들은 野原에 피여잇는 향기가 놉흔 鈴蘭의 束을 가지고 여객에게 勸하난 특수한 淸趣를 맛보게 된다. 기차 보이가 갓다주는 꼿을 먹고 남은 간즈메筩에 꼬저노코 구매한 음식을 탁자우에 버려노코 夫婦 마조안저 먹을때 우리 살님사리는 풍부하엿고 滋味스러웟다.


모스코에 갓가와 오는 농촌 일면이 거의 馬鈴薯로 깔넛다. 沿線좌우에는 걸인이 만코 停車場에는 대합실 바닥에 병자, 노인, 소아, 婦女들이 或 신음하는 자, 或 우는 자, 或 조는 자, 或 두팔을 느리고 안진 자, 담뇨를 두르고 바랑을 엽헤 끼고 잇난 慘狀, 露西亞革命의 여파가 이러할 줄 엇지 可히 상상하엿스랴. 露國이라면 혁명을 연상하고 혁명이라면 露國을 기억할 만치 시베리아를 통과할 때는 무어신지 모르게 血腥의 공기가 충만하엿다.


모스크바 C.C.C.P


舊露西亞帝國首府 베드로 그라쁘는 1917년 대혁명이 잇슨 후 현재 쏘비에트 사회주의연방 공화국首府 모스크바로 옴기게 되엿다. 모스코는 지리상 위치로 보더라도 西歐와 東亞諸國을 結한 世界大道인 사명을 가지고 잇다. 오래동안 車中生活을 하다가 여긔서 나리니 심신이 상쾌하엿다. 露國通過는 비교적 편리하나 입국체재에는 엄중한 제한이 잇서서 집행위원회 외국여권과에 가서 거주권을 맛게 되는 故로 旅客들은 될 수 잇는대로 당일 통과하는 거시 편리하다.


우리는 여긔서 3일간 滯在하엿다. 호텔 숙식료며 物價高騰에는 놀나지 아닐 수 업다. 그러고 자동차 탁시는 개인의 소유가 업시 모다 國有가 되고 얼마잇지가 아니하야 遠近不顧하고 꼭 거러다니게 되엿다.


모스코바 정거장에 나리면 조선인 朴씨가 잇서서 日鮮人間에 안내를 청한다. 이 朴씨는 前露國住在 韓國公使舘 參事로 잇든 인대 지금은 안내 영업으로 생활을 유지하여간다. 이 朴씨는 일본인을 안내하게 되고 우리는 某 일본인 露西亞유학생의 안내를 밧게 되엿다.


露西亞美術


爲先 나서난 길노 시주긴 미술관, 도레자고후 미술관, 近代 프랑스 미술관, 모로조 박물관 及 革命박물관을 언듯언듯 보앗다.

로시아 미술은 역사상으로 보면 조곰도 구속을 바다오지 아니하엿다. 露西亞文化의 중심이 변동함에 따라 예술가들은 중단되엿든 예술울 중흥시키기에 노력하엿다. 동시에 露西亞藝術은 諸外國의 영향을 만히 밧게 되엿스나 본래 가젓든 特質은 依然히 보전하여 잇섯다. 露西亞의 현대미술을 대략 3分派하여 볼 수가 잇다. 제1은 保守派로 혁명전의 전통을 보수하랴는 기술보다 구상에 중요시하는 派요, 제2는 동서양 미술의 長處를 취하여 自己化하랴는 비교적 진보한 派요 제3은 극히 소수이니 構成派예술을 民衆化하랴는 一派이다. 그 외 모스코 派며 레-닌 그라드 派며 各 地方派도 만히잇다. 其중에도 예술중심지인 모스코에는 革命로시아 미술가협회 四科협회 미술잡지기자의 조합이 잇서 年年전람회가 왕성한다.
시주긴과 도레자고쁘 미술관은 시쥬긴과 도레자고쁘 개인이 鬼集한 歐洲各國 그림인데 유명한 것이 만하섯다. 近代佛蘭西美術舘에는 近代佛蘭西畵界에 유명한 그림은 거의 다 잇섯다. 무엇보다도 모스코 미술관의 진열방법은 세계에 자랑할만 한다는 世評이 잇다.


구레무링宮殿


놉흔 성벽이 잇고 십자가 옥상이 보이는 구레무리宮殿 주위를 도라서 와시류제데휴寺院을 들어가 우리우리한 장식을 정신노코 보다가 나와서 라포레옹전쟁 기념사원을 보고 다시 나와 國營百貨商店 속을 휘둘러서 맑게 흐르는 모스코 川을 건너 힌돌노 지은 勞働宮 아풀 지나서 스즈메가 언덕으로 갓다. 이 언덕에 올라서니 모스코 全景이 眼前에 나열한 중에 穹窿會堂옥상의 금색이<46> 태양에 번적어리어 가관이엇다.


다시 나려와서 露西亞 현 정부당국들의 俱樂部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에레와公園에서 그닐다가 도라왓다. 아참에 사방 교회당으로 붙어 종소리가 울려들어온다. 나는 궁금증이 나서 나아가 사람 뒤를 딸아 갓가온 큰 會堂으로 갓다. 거긔는 마참 葬式을 거행하고 잇섯다. 棺뚝겅이를 열고 꼿속에 싸인 시체를 공개한다. 물론 何人하고 들어가서 한 번식 듸려다보고 거긔 기도를 울리고 또 여페 잇는 예수초상에 입을 맛추고 나온다.
시가지 어느 교회당 정문에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써 붙엿다. 군중은 그것을 보면서 그겨테 잇는 會堂에 들어가 절을 하고 나온다.


모스코 市街는 너절하다. 그러고 무슨 폭풍우나 지나간 듯 하야 공습할 길이 업서 보인다. 사람들은 모다 실컨 매마진 것가치 늘신하고 아모려면 엇더랴 하는 염세적 기분이 보인다. 남자들은 와이샤쓰 바람으로 다니고 여자들은 모자 쓰지 안코 발벗고 다닌다. 내용을 듯건대 비참한 일이 만흐며 외국 물건이 업서서 국내산으로만 생활케 됨으로 물가가 高騰하고 불편한 점이 不少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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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모스크바 이승만



[ ..... 미국으로 가게 하여 달라 .......

...... 길가에서 기진하여서 쓰러져 죽은 사람을 보았는데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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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정치이념이 온축된 《일민주의》의 내용은 4월 20일 저녁에 ‘일민주의 정신과 민족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중앙방송국의 방송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다음과 같은 서두는 이승만의 일민주의가 절박한 공산주의 비판 이론으로 구상되었음을 말해 준다.



“세계 모든 나라의 대소강약을 물론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자는 현재 생존의 위기를 당하지 않은 나라나 민족이 없는 터이니, 이 이유는 즉 공산당 문제입니다. 공산주의는 본래 빈천한 사람들을 부귀한 사람들과 동등으로 살게 만들자는 주의라 할 것인데, 이 주의가 러시아에서 크게 발전된 이유는 러시아 제정(帝政)시대에 전제정치가 세계에서 가장 심하였던 것이므로 맑스주의를 흡수한 레닌(Vladimir I. Lenin)의 대혁명이 성공되어 러시아 황실을 다 전멸시켜 세계에 참혹한 공산혁명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



이승만은 자신이 모스크바에서 경험했던 일을 보기로 들면서 소련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933년에 국제연맹 회의가 열리는 제네바에 갔던 이승만이 시베리아의 한인지도자들을 만날 목적으로 모스크바까지 갔다가 입국을 거부당했던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月刊朝鮮》2006년 8월호, <레만湖에서 만난 프란체스카> 참조).


모스크바 방문경험 보기로 蘇聯의 실상 설명



“빈민들은 부민(富民)을 타도해야 산다, 무식자는 유식계급을 몰락시켜야 산다, 상놈은 양반을 없애야 산다, 노동자는 재벌가를 정복해야 산다, 농민은 지주를 박멸하여야 산다, 이러한 것으로 언론과 서류를 세계에 전파하고 세포조직을 아니 둔 곳이 없게 되었으니, 영미 등 부강한 나라나 폴란드와 헝가리 같은 빈약한 나라에까지 그 세력이 뿌리를 박게 되어, 사람마다 생각하기를 러시아공산혁명으로 나라도 부강하고 백성들은 풍족하게 자유로 살 수 있는 극락세계로 알 만큼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러시아의 민중 같이 빈곤하고 압박받는 인민은 더 없을 것이니, 내가 13년 전 모스크바에 있을 때에 여관 사무원인 독일인이 나의 방에 들어와서 비밀히 말하기를 매달 미화 8원씩 받아 가지고 일을 보라 하니 살 수 없는 것을 간신히 지낸다 하며 자기의 길을 열어서 미국으로 가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들었으며,


기차에서 미국인 몇 사람이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가 기차가 러시아 국경을 넘어온 뒤에는 이 사람들이 비로소 숨을 쉬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러시아 내지에 있던 곳을 몰래 들어갔다가 길가에서 기진하여서 쓰러져 죽은 사람을 보았는데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니, 이것이 오늘 공산당 사람들이 자랑하는 러시아 극락지의 실정입니다. …


거짓 선전에 빠져서 남의 부속품인 노예가 되거나 공산당과 싸워서 민주국의 자유 복락을 누리게 되거나 이 두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야만 될 것이니, 이외에 다른 것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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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世一의 비교 評傳]
한국 민족주의의 두 類型-李承晩과 金九

109.주한미군의 철수와 국회 프락치 사건









1938.12. 삼천리 소련




[ ...... 「도망한 장교들은 잘했다」고 동료들이 부러워하면서 ........

...... 바람이 부러서 창이 덜걱거려도 께페우가 오지 않는가 ......... ]




[ ...... 농민은 .... 혁명이전 때가 살기 좋았다 해요. .........

...... 부담이 많어서 입는 것은 고사하고 빵문제 해결에도 곤란합니다. ........

...... 지금은 백퍼-센트가 다- 빈민 ....... 만족히다고 볼수 있는 것은 농촌에 있는 청년공산당원 뿐 ........ ]




[ ...... 독신이래도 8시간 勞働이면 겨우 살어갈 정도 ........

...... 물건이 니러졌으나 께페우는 재판에 부칠 수가 없으니깐 상점의 책임이 되여서 ........


...... 트로키스트 ..... 1937년 1월부터 38년 5월까지 그 명목 하에 검거당한 인수가 전부 2백60만 ........ ]



[ ...... 데파-트 한 집의 상품만 해도 하바롬스크全市에 있는 상품보다 아마 더 많고 ........ ]




삼천리 제10권 제12호

1938년 12월01일




蘇聯事情 듯는 座談會, 脫走하여 朝鮮에 온 赤露士官으로부터


出席者


脫走 赤軍士官 이반 야꼬레비치 나하로프

脫走 赤軍兵 표오톨 마까로비치 이봐노프

權忠一, 朴得鉉, 金漢卿, 朴英熙,

이박게 朝鮮軍 囑託 高井邦彦




지난번 高鼓峯事件 때 蘇聯 極東軍에서 탈출하여 蘇聯兵 2명이 새로운 살 길을 찾고저 OO에 와 있는 것을 기회로 그들을 中心삼어 이 좌담회를 열었다. 질문한 사람들은 元共産黨 幹部로서 入露의 경험조차 가젔든 몃 분들이다. 우리가 이 좌담회를 개최한 까닭은 蘇聯知識의 一資料를 어드려고 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 탈주병이 祖國蘇聯을 어떻게 보는가를 알고저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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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井. 그러면 나부터 먼저 張鼓峰事件에 현지에서 탈주해 온 蘇聯兵<92> 2명을 소개하겠읍니다. 이분은 나하로푸군 24세올시다. 저쪽 분은 이와노푸군 22才올시다. 양군이 다 歐羅巴 로시아 출신으로 나하로푸군은 8년제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는 하사관양성소를 중도에서 퇴소했읍니다. 이와노푸군은 극히 짧게 밖에 학교에 가지모했음으로 무학이라해도 과언이 아입니다.


나하로푸. 사건이 勃發하기 얼 전에 일인대요. 蘇聯의 장교 6명이 ****?近에 갓는데 수비병들이 확실히 삼림 속에 들어간 것을 보았다고 하지만 장교 6명이 죄다 행방불명이 되었든 것입니다. 내 생각엔 그이들도 滿領내에 탈주한 것 같슴니다. 그때 내가 있든 군대가 1개 연대 출동해서 장교 6명이 들어간 국경 부근의 산을 죄다 찾어 봤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말었읍니다. 그때 도라오면서 「도망한 장교들은 잘했다」고 동료들이 부러워하면서 외국의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것이 내게 있어서 마음의 파동을 이르게 했읍니다.


記者. 이와노푸군은 어떳습니까.

이와노푸. 나는 個人農임으로 늘 꼬르포-즈에게 압박을 받어 심히 괴로운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든 관계로 생각할수록 로서아가 싫어졌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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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노푸. 우리 가족의 일상생활이란 그야말로 恐怖의 연속이라고 해도 좃습니다. 바람이 부러서 창이 덜걱거려도 께페우가 오지 않는가 하고 신경이 산란해 집니다.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도 군복을 입은 자가 오는 것을 먼데서 보면 우리들 잡으러 오나부다고 벌벌 떨고 있읍니다. 이것이 우리들 농민의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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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漢卿. 소聯學校에서는 東洋事情이라고 할는지 특히 日本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키고 있읍니까?


나하로푸. 4년제의 의무교육학교에서는 日本에 대해서 또는 그 他 다른 외국에 대해서 교육하지 않습니다. 지리는 배워 주나 극히 개략적입니다. 4년제 이상의 학교가 되면 일반정치학을 배워 줌으로 각국의 정치상태, 국내상태 등을 배워 주고 특히 日本에 대해서는 로시아가 본 日本의 나쁜 점에 주력해서 배워 줍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농민은 매우 가난하다든가 상품이 없다든가 하는 것을 밤낮 들었든 까닭에 오늘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슴니다. 그랬으나 현재는<95> 그것이 틀린 것으로 알고 로시아의 교육은 진실하지 못하고 역선전하는 것이라고 알었읍니다. 학교는 상급이 됨에 따라서 정치교육이 진보되고 로시아대외정책이라는데 대해서 가르치고 있으나 제1상급의 대학교 혹은 사범학교에서는 그 경향이 만습니다. 또 그 교재로서는 주로 신문에서 산 재료를 취해서 배워 주긴 하지만 그 신문도 결국은 로시아 신문이 아니면 않되는 것이니까요.

高井. 외국신문은 전혀 볼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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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최근엔 蘇聯政府의 종교에 대한 정책도 엣날과 같이 심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떠읍니까?

나하로푸. 정부는 법률로선 종교의 자유를 인증하면서도 무신론자, 무종교단체라는 것을 맨들어서 그것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박멸책을 강구하고 있읍니다.


權. 현재 소련민중은 종교에 대해서 어떤 感을 가지고 있읍니까? 우리도 들었지만 無神運動者들이 선전하기 위하여 농촌에 가면 농민들이 뫃여들어 때러서 골통을 깨고 도라 온다는데 사실입니까?


나하로푸. 혁명전에 교육을 바든 사람들은 전부 신을 믿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자들 중에도 맑씨즘에 대해서 의심을 갖게 되는 땐 신앙을 가지는데요. 더구나 부모들의 영향이 있음으로 이런 사람들은 몰내 긔도를 하는 일이 있읍니다.



農民은 極度로 絶望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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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농민은 정말 행복합니까.


나하로푸. 개인경영으로선 재산을 빼앗깁니다. 꼴포-즈조직은 월급이지요만 이전은 勤農들에게 매우 환영을 받어답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선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前途의 희망이 보이지 않음으로 蘇聯의 농업자들은 매우 실망하고 있읍니다. 혁명이전 때가 살기 좋았다 해요.



朴得鉉. 그렇게 되면 현재의 농민생활과 혁명이전의 농민생활과의 차는 어떻읍니까?


나하로푸. 帝政時代엔 아주 큰 지주가 있었고 그밖게 농민이 그것과 비교된 때문에 어쩐지 재미없는 일이 많은 것 같았지만 그때도 현재의 농민과는 비교할 배가 아니지요.<98>

이와노프. 문제도 않된다고 하는데요.


나와로푸. 현재 농민과 帝政時代의 농민과를 비교할 만한 정확한 數字는 내가 여기서 말슴하지 못하지만 내 부모든지 또 형제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帝政時代 世界大戰 당시 이전은 그 지주들이 농민에게 그 토지를 난하줄 운동이 있어서 그래서 농민은 대지주로부터 토지를 가지고 자기의 토지와 재산을 가질 遇境가 있도록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은 꼴푸즈가 되면선 자기의 재산, 자기의 토지라는 걸 가질 수 없고 또 정규수납의 규정이 있기 때문에 부담이 많어서 입는 것은 고사하고 빵문제 해결에도 곤란합니다.


高井. 거기에 내가 한 마디 말슴 더 하겠읍니다. 쏘베-트당국은 농민으로부터 것보리를 1키로 5카페-클을 수납해서 이것을 찟튼지 혹음 제분하든지 해서 1루-부르 카페클 내지 2루-부르 즉 30배 내지 40배의 값으로 팔어 버립니다. 찟는 데라든가 제분하는 비용을 합한다 치드래도 약 20배의 값이 되지요. 우유에 있어서도 1릿토르 15카페-크르를 수납하고 이것을 그대로 1루-부르 50카페클 즉 10배의 값으로 국영상점을 통해서 국민에게 판매하고 있읍니다. 그 差額이 전연방에 쌓이고 쌓여 蘇聯國家 豫算의 반액을 형성하고 있읍니다. 이것을 보드래도 꼴포-즈란 것이 조직적으로 농민을 착취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즉 농민은 정부에게 자기의 소득을 10배 많으면 30배 40배식 착취하고 있으니 쏘베-트 농민이 곤궁에 빠질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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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당신네들이 일상 먹는 음식을 거즛없이 말슴해 주시요. 그것으로 대체를 알 수 있으니까요.


이와노프. 아츰은 우유와 껌정팡... 우유를 먹을 만하면 상당한 셈죠. 점심은 감자얘요. 고기를 살 수 있으면 먹게 되지만 지금은 닭과 소를 먹이게 못하는 까닭에 소고기 같은 건 도모지 먹질 못해요. 지금은 그런 고기도 없이<99> 대체로 감자와 파를 한데 짓*서 가지고 가*쯔데쯔를 맨드러 먹지요. 거기에 쓰-프 이것도 감자와 카*쯔. 저녁은 차와 껌정빵, 연어같은 *을 먹을 때도 있지만.


權. 나는 1931년. 1932년에 우라지오 太平洋 勞働書記局에 있을 때의 일이지만 그때 *껌정빵이 없어졌단 이얘길 들었는데 아직 있읍니까.

이와노푸. 우리들의 상식 인데요.

나하로푸. 도회엔 한때 없어진 때가 있었을지 모르나 현재 극동에 있어서 蘇聯 농민의 긴요한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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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농민은 얼마나 세납을 부담합니까.


高井. 농민이 바치는 세금 중에서 제일 많은 것은 소득세입니다. 이것을 소득률에 따라 지불*니까 여기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하로프. 그다음에 문화세 같은 것이 십수종이나 됨니다.

高井. 그 밖에 보험료가 있읍니다.

나하로프. 세금 외에도 여러가지 돈을 많이 냄니다. 먼저 의무적으로 채권을 사야 됨니다. 그밖에 스페인 전쟁 때문에 자기들이 동지를 구조할 자금이라든가 사변 때문에 곤란을 받고 있는 支那의 자제들을 구조할 자금이라든가 혹은 각국 혁명 때문에 타국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할 자금이라든가 여간 많은 것이 아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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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 농민들은 현정부의 정책에 대하야 만족*하는 모양이지요.


나하로프. 만족이란 蘇聯에는 없읍니다. 농민들은 결코 만족하여 있지 안슴니다. 혁명이전에는 농촌에 *는 빈민 라고 돈이 없기 때문에 해도 약 15퍼-센트밖에 안되고 그 외의 85퍼-센트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백퍼-센트가 다- 빈민이 되였읍니다. 물론 한사람도 신정부의 정책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읍니다. 다만 만족히다고 볼수 있는 것은 농촌에 있는 청년공산당원 뿐으로 그 사람들은 꼴포-즈의 근육노동에 참가할 필요가 없고 다만 선전이라든가 세금 독촉에<100> 한목 끼여서 일할 뿐인 고로 筋肉勞働을 안 하게되니깐 만족해 하지요.



都市의 勞働者 生活



金. 도시 勞働者들은 어떳슴니가.

高井. 도시 勞働者들의 생활이라고 말하면 勞働法에 따라서 勞働時間은 8시간이라고 제한되여 있기는 하지만 8시간의 勞働으로선 가족을 부양해 나갈 수가 없읍니다. 제한되여 있어도 가족들 때문에 3시간 내지 4시간을 연장하야 11시간 12시간의 勞働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記者. 월급이 아니고 일한 분량대로 주는군요.

이봐노프. 독신이래도 8시간 勞働이면 겨우 살어갈 정도입니다.



金. 그래도 勞働者가 농민보다 생활이 행복함니까.


이봐노프. 물론 勞働者는 농민보다 생활이 양호함니다. 그러나 혁명전에 勞働과는 비교도 될 수가 없읍니다. 싸베트에서 비교적 행복되게 뵈는 것은 勤務員입니다. 그 중에서도 학문이 있고 또 특수한 기술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스탈린은 기술은 모든 것을 해결한다.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표어를 늘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 해당하는 기술자, 학문이 있는 사람들이 비교적 유복하게 생활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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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로프. 물론 다 그러타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자에게만 조치요. 왜 그러냐하면 그들은 공산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좋은 지위도 어들 수 있고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할 수가 있으니깐요. 그러니깐 그런 사람들은 공산주의는 아주 좋은 것인 줄 알지요. 그러고 일반 청년은 반동적으로 여기 대하야<101> 공산주의라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그것은 공산주의자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읍니다.



肅淸工作의 一例들 들음



記者. 여기서 문제을 박궈서 스탈린의 숙청공작에 대하야 즘 이야기합시다. 싸베트 건설공로자를 투옥한다거나 살해한다거나 하는 스탈린의 숙청공작에 대한 蘇聯내의 일반사회의 공기 같은 것은 어떳습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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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井. 당신도 3년 징역 살었다지요.(笑聲)

나하로프군이 처형 바덧다는데는 금일의 싸베트를 잘 나타내고 있는 무슨 사정이 이슬 듯하니 좀 들어봅시다.


나하로프. 생각해 내는 것만 해도 실증이 남니다만 나는 3년간의 强制勞働에 복역하였읍니다. 감옥에 드러 가기까지는 나는 어떤 상점 발송계에서 일을 보고 있었읍니다. 그 상점이라는 것은 지배인과 야체-카와 께페우의 3세력이 주장이 되여 있어서 내가 발송계니깐 물건을 어디로 보내라구 명령을 바더서 그대로 보낼야구 하면 금방 또 께페우에서 그 물건은 어디로 보내라구하는 주문이 드러옴니다. 나는 명령이니깐 께페우의 주문대로 했드니 처음 보낼 작정이든 그 곳에서는 물건이 안 오니깐 그것이 분실되였다구 말이 되는 것임니다.


高井. 께페우가 중간에서 주문을 했다는 것은 비밀이니깐 결국 죄는 발송계에 씨여지지요


나하로프. 물건이 니러졌으나 께페우는 재판에 부칠 수가 없으니깐 상점의 책임이 되여서 보내야 할 걸 보내지 않은 발송계의 책임이 되는 것임니다. 그 때문에 국가에 손해를 끼첫다는 의미로 재판에 걸닌 것입니다. 나는 국가의 유해자라구 하야 그때 처벌당한 것입니다.


記者. 재판 현황을 하나


나하로프. 내가 처형당한 재판소는 인민재판소였읍니다. 그 재판은<102> 재판장과 판사장 앞에 내가 서고 또 검사가 있읍니다. 거기다 또 배심원이라고 해서 농민출신이 한 사람, 勞働者출신이 한 사람, 이 밖에 여자 서기가 1명 이것으로 구성된 데서 재판을 바덧는데 별로 조사도 없어 그냥 인정서를 가지고 약간 물어 본 후 그냥 그 조서를 認定식히고 단 10분도 안돼서 징역 3년 强制勞働이 회부한다는 판결을 바든 것입니다. 그리고 3년의 强制勞働을 모스코바 마보루가에서 지냈읍니다.




犯罪, 乞食, 賣笑婦



記者. 그러면 이쯤에서 화제를 돌여서 이번에는 일반사회 사정을 들읍시다.



朴英熙. 싸베트에서 어떤 범죄가 제일 만습니까.


高井. 그것은 무엇무엇해도 지금 유행하고 있는 트로쯔키스트의 검거일 걸요.(笑聲)

나하로프. 범죄라고 하기엔 안됐지만 국가에 손해를 준다든가 혹은 국가가 원치 안는 자는 다- 싸베트의 범죄자로서 트로쯔키스트의 명목으로 검거당하는 것이 제일 만슴니다. 그 다음이 公金消費입니다. 그밖에는 뭐 다 그러치요. 살인은 도회에 많고 절도 같은 것은 농촌에 많은 것같이 보힘니다.


高井. 그것은 농촌이 얼마나 貧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暫間 소개함니다만 범죄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싸베트에서 제일 많은 범죄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트로키스트라고 생각함니다. 1937년 1월부터 38년 5월까지 그 명목 하에 검거당한 인수가 전부 2백60만9천인이나 됨니다. 그리고 本年度 內務人民委員部豫算의 강제노역소 경비를 정하는 기초로 되여였는 정부측의 자료에 의하면 강제노역소 재감자 수가 6백11만2천4백3십2인 약 1천만인입니다. 이중의 대부분을 정부측에서 소위 트로쯔키스트라고 보는 자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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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弱한 民衆娛樂



金. 蘇聯의 민중오락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이와노. 도시에는 여러 가지 있읍니다마늘 우리 농촌에는 手풍금에 맟어 딴스를 하는 것쯤 한 정도이고 혹 휴일에는 술도 먹습니다.

나하로. 다른 것은 없어도 술만은 잘 공급하여 줍니다. 따라서 농촌의 오락으로서는 딴스와 술의 정도입니다.

權. 우리들이 로시아에 있을 때의 영화는 5箇年計劃의 선전영화가 대부분이고 다음은 모다 아메리카의 희극 같은 것이였는데.

나하로. 공개영화는 이전에는 獨逸 것도 있는 모양이였으나 지금은 주로 아메리카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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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者. 일본에 물자가 많은데는 저 三等大將 류시코프도 놀난 모양인데 대체 로시아의 현상은 어떠하십니가.


나하로프. 蘇聯의 물자란 대체 빈약합니다. 있기는 있드래도 불필요한 것이 많고 필요한 것은 적습니다. 워드카 같은 것이 많지요. 그러나 팡 같은 것은 적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 데파-트를 구경하였는데 그 데파-트 한 집의 상품만 해도 하바롬스크全市에 있는 상품보다 아마 더 많고 민중이 즐겨할 것도 더 많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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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得鉉. 蘇聯의 兵役은 自由兵役입니까. 强制兵役입니가?


나하로프. 蘇聯의 兵役은 형식으로는 自由兵役이여서 징병한다 하드래도 徵兵檢場에 査가면 나도 그랬지만 징병관이 「당신은 兵役에 종사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라고 하는데 그 徵兵官의 골 속에는 「兵役을 기피하는 者 國賊이다.」라고 하는 큰 글자가 씨어저 있읍니다. 그것을 보고는 모다들 자진하여 지원합니다.(笑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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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者. 日本에 와저 제일 감탄된 것이 무었입니가. 어데 간단히 대답하여 보시요.


이하노프. 제일 감탄한 것은 전쟁 중인데도 극히 평온한 것 그리고 日本은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물자가 없다는 것을 蘇聯에서 들었고 로시아는 물자가 아주 풍부하다고 하는 것이 전혀 그 반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日本 사람들은 퍽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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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4.



[ ..... '바자루'(서울 야시장과 같으나 그 보다도 더 급이 낮은 시장)에는 사창이 무수히 있는 것이다 ...... ]



[ ..... 현재 우리의 최대의 과업은 이남의 반동분자를 철저히 숙청하고 남북통일을 ........

..... 그 다음의 최대과업은 .... 우리 조선을 쏘련방에 가입시키는 문제입니다. ......... ]



1948.11.4. 동아일보


소련기행 박원민



이북의 소련방화 6

일부 한인유학생이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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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의 나라 쏘련! 그리고 노동자들을 위한 오락실이니 도서관이니 침실이니 하는 것도 그야말로 선전에 불과한 형식뿐이었다.


기술노동자를 양성하는 직업학교에도 수개소나 가 보았으나 설비도 한심하고 사용하는 기계도 영국제나 독일제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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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공장 등의 규율은 순전히 군대식이었고 주력을 군수공장에 두고 있었다.

4월 21,2일 경의 일이다. ..... 그날 북조선에서 간 쏘련유학생 약삼백명의 대표자가 '까잔'에서 우리 일행을 만나 보러 차저왔엇다.


그는 '까잔'종합대학 법과학생이며 해방전까지 감옥생활을 8년동안이나 한 30세 청년이였다.쏘련유학을 가기전까지는 북조선민정 간부였었고 김일성이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중의 하나이었다. 이청년이 우리가 투숙하고 있는 북부 여관에 와서 현재 평양 제이 여자중학교 교장인 조여사와 이야기를 하던 중 다음과 같은 말을 강조하였다.


" 물론 현재 우리의 최대의 과업은 이남의 반동분자를 철저히 숙청하고 남북통일을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최대과업은 무엇인지 아시요. 동무들은 실익양성이니 문화향상이니 산업개발이니 하지만 .... 물논 이것도 큰 과업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 중하고도 큰 과업은 우리 조선을 쏘련방에 가입시키는 문제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모-든 것을 깨다를 수 있었다.

쏘련의 정책과 현재 북조선의 근본 정책은 이 한마듸로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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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논 '모스크바'에는 공창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시내 각처에 있는 '바자루'(서울 야시장과 같으나 그 보다도 더 급이 낮은 시장)에는 사창이 무수히 있는 것이다.(계속)






* *


1947.1. 소련


[ ..... 대소변 사이에 간이 마켜 있지 않고 대변 보는 데는 다만 구멍들이 둥글둥글 뚤려 있을 뿐 .......


..... 명색만은 침대차이였으나 밑바닥은 '스프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무 판자로 만드러젓고 또 열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해노치 않은 ......... ]



1948.10.29. 동아일보


소련기행 박원민


중공군 뒤에 소군 2

서백리아 철도는 원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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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기다리는 23일동안 우리는 여관이 아닌 여관에서 즉 '크라스키노'에서 우리가 타고 온 ..철도침대차 속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쏘련에는 여관이 있기는 있어도 극히 수효가 적은 모양이었다. 이것은 '보로씨로브'역을 가보면 많은 소련 사람이 떼를 지어서 마치 서울역 앞에서 사람들이 자듯이 역안 땅바닥에서 자면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역안에 있는 공동변소에 들어가 보면 세계일등국이 이러한 변소를 사용하는가 하고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남녀용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대소변 사이에 간이 마켜 있지 않고 대변 보는 데는 다만 구멍들이 둥글둥글 뚤려 있을 뿐이고 환기장치라고는 유리창 하나 없기 때문에 항상 가득 잠기어 있는 그 고약한 냄새에는 지금 생각하여도 골치가 또 아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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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질문

'현재 중국 공산군은 대단히 불리한 전쟁을 하고 있으며 특히 연안이 함락(1947년 4월에 함락하였음)될 위험이 있는 데 어찌하여 쏘련은 원조하지 않고 있는가?'

답 우스면서 '물논 원조하고 있다. 내가 방금 만주에서 나오는 길인데...'

문 '그러면 소련군은 정복을 입고 원조해 주느냐?'

답 또 우스면서 ' 중국 사람같이 변장한다'


이로 보건대 지금도 역시 쏘련군인들은 중공군과 같이 변장하고 중국말을 사용하면서 중공군을 원조하고 있다는 것이 틀림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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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밤 아홉시편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에 올났다. 기차는 명색만은 침대차이였으나 밑바닥은 '스프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무 판자로 만드러젓고 또 열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해노치 않은 참으로 위험 천만한 것이였다. 하는 수 없이 중단과 상단에서 자게 되어 우리는 끈으로 자기 침대를 묶은 다음 그 끈의 한쪽을 모자 거는 못에다 매여 놓고서야 겨우 조끔 안심을 하고 잘 수가 있었다.(계속)







1948.10.31. 동아일보


소련기행 박원민



도처마다 걸인군 3

감시의 열차생활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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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가 될 무렵에 어느 조끄마한 역에 기차가 정거를 하였다. 이때였다. 쏘련 사람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유, 마늘, 생선, 찐 감자 등을 들고 우- 하고 모여든다. 우리나라의 정거장 풍경을 상상하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때때로 거지들이 차속으로 들어와 애걸을 하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 거지 이상이였다. 여기서 일행중 여교원 하나가 먹다 남은 빵 한개를 가지고 나갔더니 이것을 사려고 무려 백여명의 사람이 모여 들었다. 심지어 나종에는 기차안에 있던 손님들까지도 그것을 사려고 모여든다. 그리하여 빵 한개가 백50 루-부를에 팔렸다. 백오십 '루-부를'이라 하면 그 당시 이북돈으로 환산하여 육백원이다. 그때 육백원이면 이북서 대두 한말반의 쌀을 살 수 있었든 것인데 이로 미루어 보드레도 쏘련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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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다도 우리는 수백명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역안 땅바닥에 누어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발사하는 코를 찌르는 썩는 냄새와 같은 체취에 더욱 얼굴을 찌프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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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 이산맥의 서쪽 구주 쪽에 '쓰벨노블스크'라는 큰 공업도시가 있다. 이곳에는 북조선서 보낸 유학생이 약이십명 가량 공부하고 있다. 기차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 일행이 이곳을 통과하는 것을 알고 유학생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들은 우리를 붓잡고 이구동성으로 '여기에는 쏘련 각처에서 모여 든 많은 유학생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조선 유학생이 가장 성적이 우수합니다. 그러나 무어니무어니 하여도 제일 배고픈 데에는 못견디겟읍니다. 지금 우리들 중 약 이할이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읍니다. 이 학생들은 멀지 안어 조선으로 호송당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곤난한 점이 많겠지만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였다. 우리 일행은 가지고 있던 우리 식량중에서 시큼하고도 씁쓸한 검은 빵을 나누어 주었더니 무엇보다도 좋은 선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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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5. 박헌영



[.... 우리는 소련 일국 신탁통치에 이의(?)가 업다......
.... 소련화한 사회주의적 노선에 따라 ... 발전되기를 바란다 ......]



[.... 조선을 소련방의 일연방국으로 하고저 조선을 소련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대답 그러타고 볼 수 있다 ....... ]



1946.2.19. 동아일보



미국기자와 박헌영씨의 문답

정확한 사실임이 조사로 판명



군정청 공보국 발표


미국인 기자에 대한 비난을 풀기 위하야 다음의 기사를 발표하는 바이다.

지난 1월 26일 박헌영 씨는 뉴욕 타임스기자 존스톤 씨를 조선으로부터 방축하기를 요구한다는 공문서를 서명날인하야 미군사령관에게 제출하얏고 동시에 조선인기자 수명도 존스톤씨에게 대한 비난서에 각각 서명하였다.


즉 박씨는 1월 5일 기자단회견석상 자기가 발표한 성명서 중에 존스톤 씨는 완전히 공산당 당수의 성명을 오해하야 인용하얏다는 사실을 특별히 비난하얏다.

미군사령관은 이 비난을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백반 조사를 시켯다.조사한 결과의 사실은 다음과 같다.



조선공산당 정식대변자로 박씨는 1월 5일 기자단 회견에 미국인 기자를 초청하였다.

3명의 미지특파원 존스톤 씨 마속크씨 콘월 군조는 미군사령부 피알오 장교 턱카 대위와 동반하야 정식으로 기자단회견에 출석하였다.



미국인기자회견석상에서는 모다 영어를 사용하였다.당시 기록한 턱카 대위와 존스톤씨의 수기중에는 질문한 것과 대답한 것이 있는 데 그 내용은 정확한 것으로 콘월 군조도 기후에 그 정확성을 인정하였다.즉 박씨와 조선인기자의 비난중에 인용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데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질문 (존스톤) 조선을 소련 일국의 신탁통치로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케 생각하는가


대답 (박씨 영어로)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이의(?)가 없다. 즉 우리는 소련 일국 신탁통치에 이의(?)가 업다.



질문 장래 조선의 정치적 발전과정에 대한 의견여하


대답 우리는 소련화한 사회주의적 노선에 따라 10년 내지 20년 안에 자주독립민주주의국가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질문 이것은 결국 가까운 장래에 조선을 소련방의 일연방국으로 하고저 조선을 소련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대답 그러타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불가능하다


질문 왜 지금은 불가능하냐

대답 현재 조선인은 이것을 조와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지리적으로 보아서 지금 소련방에 포함되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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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공산당의 청년동맹규약 .......

..... " 사회주의조국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 무한의 충성을 다하도록 교육한다. " .......... ]



1946.5.28. 동아일보


사회주의조국에 충성하라

조공청년동맹의 지도강령




한때 조선을 소련의 일연방 되기를 희망한다고 외국기자단에서 말한 조공책임비서 박헌영에 대한 사실이 미국 뉴욕타임쓰지로부터 세간에 보도되자 세인의 공노를 사게 되엇슬대 변명이 구구하엿는데 요지음 조선공산당의 청년동맹규약을 들추어보면 막쓰 레닌의 리렴과 모순되는 다음과 같은 일절이 있다.

"사회주의조국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 무한의 충성을 다하도록 교육한다."

이것은 조선혼이 사라있고 조국재건에 피끓는 조선청년남녀에게는 이따위 얼빠진 지도가 감히 손을 대지 못할 것으로 밋으나 일방 상심할 일이 아닐수 없다.
2023-03-08 19: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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