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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단편소설용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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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3  13: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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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인규

마침내 우리는 걸어서 사십 분 정도 되는 거리를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그 민박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트럭 한 대만 있는 거로 봐서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를 뒤로하고 나는 출입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러자 귀찮다는 듯 하품을 하며 주인 여자가 나왔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삼 년 전쯤 여름에 왔었는데.”

나는 외투에 묻은 눈을 털며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주인 여자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몇 번이나 날 주시하더니 이내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라먼 알지예! 그때 밤새도록 기타 치던 분 아임니꺼? 덕분에 그때 우리도 잘 놀았는데. 어찌 왔습니꺼? 이런 날에. 보자근데, 그때 같이 왔던 여자분 둘이는 안 왔는갑지예?”

그녀는 날 또렷이 기억할 뿐 아니라, 그때 함께 온 여자들도 기억해내었다.

. 그리되었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방은 우리가 예전에 묵었던 곳을 약간 개조한 것 같았다. 기억이 났다. 화개천이 한눈에 들어오고 복도를 지나 조금만 나가면 바위 위에 통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었다.

방은 따뜻했다. 주인 여자는 손님이 있든 말든 이렇게 늘 군불을 땐다고 했다. 얼른 외투를 벗고 아랫목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도 그는 비 맞은 중처럼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새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소담스러운 눈만 사박사박 내리고 있었다.

내일도 눈이 안 그치면 어쩌지요?”

겨우 한다는 말이 눈 걱정이었다.

어쩌긴? 그래도 올라가야지.”

그에게 그렇게 말했으나, 솔직히 걱정되었다. 전문산악꾼이 아닌 우리로서는 이 정도의 눈은 치명적이었다. 변변한 장비 없이 겨울 산을 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 줄은 어느 겨울 무턱대고 월악산을 다녀와서 나는 알았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충주여서 식이 끝난 뒤, 일행 몇과 호기로 산에 올라간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정장 차림이었고 먹을 것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정상까지 못가고 중간에서 돌아오다 눈을 만나 있는 고생을 다 하였다.

갓 없는 백열등이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간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인 여자에게 부탁하여 간단히 저녁밥을 먹은 우리는 노곤함에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 새벽에 한기가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을 떴는데, 옆자리에 있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화장실에 갔겠지, 하고 재차 눈을 붙이려 할 때 눈에 반사된 그림자가 얼핏 보였다. 그림자는 바깥 평상에 있었다.

뭐해? 추운데.”

그는 평상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형님! 그 애도 몹시 춥겠지요?”

잠이 덜 깬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이 밤중에 느닷없는 질문을 꺼낸 그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허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손으로 내리는 눈을 받으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민박집 마당과 화개천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어 장관을 이루었다. 눈이 부실만큼 하얀 이곳의 풍경은 어제의 춥고 어두웠던 내 마음을 금세 환하게 바꾸었다. 나는 탁 트인 마당에 서서 기지개를 켰다.

벌써 일어났어예? 밤새 눈이 마이 와서, 산에 가는 건 좀 무리인가 싶은데.”

주인 여자였다. 그녀를 보자 나는 문득 그녀의 딸과 남편이 생각났다.

. 잘 잤습니까? 그런데 그때 딸아이가 하나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 화순이예? 길 건너 친정에 있습니다. 기억이 나는갑지예?”

그녀는 금방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럼요. 그때 그 아이가 얼마나 귀여웠습니까? 기억이 생생하게 나지요. ! 아저씨가 안 보이네요. 어디 갔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별 대답 없이 애매하게 웃더니 이내 부엌으로 종종걸음쳤다. 머쓱해진 나는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이미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의 표정으로 봐선 곧바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이인규 소설가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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