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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가요계의 거장 삼포(三包) 정두수 가요제 이대로 멈출 것인가?2005년 정두수 가요축제로 시작 해 2022년 제10회 하동 정두수 전국가요제 후 중단
장성춘 기자  |  hdnews9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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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4.17  13: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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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문화 재첩축제 전야제 행사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연관성 부족 등 이유도 석연치 않아

지난해 김진태 의원 등 정상 개최 촉구 여론에 개별 행사 분리 밝혔으나 올해 예산부터 없어

신인가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가요제를 왜(?)없는 것도 만들어 하려는 지자체와 대조적

코로나 팬데믹 상황까지도 넘기고 계속 되었던 국내 신인가수들의 등용문 정두수 전국가요제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난해 갑자기 중단이 되었고, 이후 지난 3일 열린 8회 하동섬진강문화 재첩축제 추진위원회 회의참석자들을 비롯해 내외 군민들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051125일 하동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정두수 가요축제로 처음 개최가 되었으나 이후 하동 정두수 전국가요제로 명칭이 변경 됐다.

그리고, 행사도 당초 개별 행사에서 하동섬진강문화 재첩축제가 열리면서 해당 축제의 전야제 행사로 함께 해 국민적인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렇게 이어져 온 하동 정두수 전국가요제는 2022년 제10회 행사가 열린 후 지난해 갑자기 멈춰서 버렸다.

이와 관련해 하동군의회 김진태 의원은 하동군의회 제322회 제1차 정례회 5분 자유발언을 통해 “11회째를 맞는 정두수 전국가요제가 섬진강문화재첩축제와의 연관성 부족 등으로 올해부터 제외 돼 개별 행사로 분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일정, 예산편성 미정으로 추진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라지적하면서 행사의 축소 우려와 집행기관의 가요제 개최에 대한 의지 부족에 깊은 우려를 표명 했었다.

그리고 하승철 군수는 지난해 갑자기 중단이 된 정두수 전국가요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일정 등의 이유로 올해는 부득이 하게 행사를 치룰수 없게 되었지만 내년에는 정상적으로 개최가 될 것이라 했으며, 이에 기자는 정두수 선생의 제자 들을 비롯해 가족들에게도 같은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하면서 추후 적극적인 협조까지 당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같은 군민들의 지적과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 올해 하동군은 정두수 전국가요제에 대한 명확한 책임부서나 행사 개최의 시기 등 기본적인 계획은 물론 예산조차도 세우지 않은 것으로 확인이 됐다.

더구나 지금껏 이미 10여년을 개최해 왔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확인된 관련 부서에는 어떤 기본적인 자료나 준비된 대책은 물론 해당 공무원의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요즘 트롯이 가요계의 대세로 정동원, 김다현, 손빈아, 빈예서 등 하동군과 직간접 적으로 관련이 있는 어린 가수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앞서 이미 하동 정두수 전국가요제로 탄생된 가수도 결국 10명인 것이다.

다수의 군민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19년 전, 1회 정두수 가요제 행사를 치른 후 당시 기자가 쓴 칼럼의 그 첫머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성공적인 첫 작품 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도 있었지만 한국예총연합회 하동지부와 가요제 추진위원회, 특히 재경 하동향우회나 재부 하동향우회 등 하동의 가족, 하동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정두수 가요축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잔치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지만 아직도 웃지 못 할 그 사건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더러는 욕하는 이도 있다. 그날 그 무대에 올랐던 여자가수 김00씨가 자신있게 내뱉은 한마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살아생전 선생님의 모습이.......’ 만약 그 여자 가수의 말대로 지칭한 분이 고인이었다면 지극히 예의 있고 사려 깊은 한마디로, 관객들의 분위기를 숙연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선 무대 바로 앞자리에 그 명복을 빌어드린 선생님이 가만히 앉아 계셨는데 그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 뒤통수를 때린 한마디에 황급히 사태 무마에 나선 사회자, 부축을 받으며 무대로 올라가는 정두수 선생님, 관중들의 궁시렁 거리는 욕설과 어이없는 듯한 웃음. 적어도 오랜 세월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노래를 불러온 그 여자가수는 무대 경험을 살려 실수를 만회키 위해 정두수 선생님이나 관중 앞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럴싸한 변명이라도 했어야 좋았을 것을 국내 가요계를 짊어지고 온 원로분께 사과는 커녕 고작 한다는 말이 자주 안보여 주니까 그렇다니....’ 누가 누구에게 보여야 될 입장인지 정말 한심하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랬다. 대한민국 가요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하동군 고전면 출신 작사가 삼포 정두수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가요제의 첫 시작이 이렇듯 원만하지 못했고, 생전 서울에서나 하동의 송림 인근 허름한 모텔 앞 개장국 집에서 기자와 막걸리로 시작을 했다가 결국 소주를 막걸리 삼아 마실 때 쯤이면 늘 그랬다.

당신께서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면서 한껏 고향 하동을 노래했고, 형님(소설가 고()정공채)과 더불어 당신 삶의 굴곡들을 토로하다 잠들기 일쑤였다.

당신의 호를 삼포(三包)로 할 만큼 하동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그 하동을 늘 노랫말로 승화시켰던 하동이 낳은 가요계의 거장 작사가 정두수를 우리 하동사람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작사가 정두수 선생은 19374월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나 부산 동래고등학교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가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당선됐다.

1963년 가요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한 이후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3500여곡을 작사했다.

20168월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창작에 대한 열의를 놓지 않았다. 마지막 제자이자 작곡가인 가수 정음을 통해 유작인 작심삼일자존심을 남겼다. 현재 전국 13곳에 정두수 선생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장성춘대표기자. 블로그naver.com/hdnews9001

 

사진 = 2008년 고전면 배드리 공원 노래비 제막식 당시의 작사가 정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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