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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인규 작가의 용서(1)
하동군민신문  |  hdgm9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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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08  17: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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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2021년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지원사업으로, 평사리문학관에서 활동 중 집필한 작품이다.

 

구름도 고요히 지나는 산

이 산을 버릴 수가 없어

그 살이 아파하는 소리

화엄을 내딛는 혜안의 시작

폭포가 수직으로 가리키는

용오름의 깊은 뜻을

불일폭포는 가두고 있다.

- 최동옥 시, 불일폭포중에서

하동 쌍계사 입구의 돌다리 위에는 몇 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린 행락객들이 띄엄띄엄 사진을 찍고 있을 뿐, 평소처럼 소란스럽지 않았다. 바람은 없지만, 날씨는 얼음을 가슴에 얹혀 놓은 것처럼 싸늘했다. 사자 형상을 한 다리 난간의 축대에 기대어 사진을 찍던 중년 남자는 날씨가 의외로 추운지 미간을 찌푸렸다. 하긴 겨울이라 해도 다 같은 추위일 수는 없었다. 이곳 지리산의 겨울 추위는 한 번이라도 맞본 사람이라면 진절머리를 칠만큼 매서웠다. 그나마 바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바람까지 동반한 추위라면 이곳은 아예 사람이 얼쩡거리지도 못할 것이었다.

오후부터 하늘이 으등그러져 있더니 끝내 하늘에서 성긴 눈들이 다리 위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눈발이 굵어지면서 다리 위의 지저분한 발자국을 하나둘씩 덮어버렸다. 다리 난간에서 사진 찍던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이 내리자 그만 버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저만치 비켜난 겨울 산은 어둑어둑 밀려드는 어둠 때문에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쌍계사를 거쳐 불일폭포로 올라가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내리는 눈의 양도 그렇지만 산간의 어둠이 훨씬 빨리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B 시에서 승용차로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네 시 반쯤이었다. 이보다 더 일찍 올 수 있었으나, 어제 내린 눈 때문에 악양 부근부터 여기까지 도로 곳곳에 결빙이 된 까닭이었다.

나는 그에게 오늘은 이만 포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못내 아쉬운지 한참을 불일폭포 쪽을 보더니, 겨우 배낭을 짊어졌다.

어떻게 할까? 이 근처에 묵을까, 아니면 그때 갔던 그 집?”

돌다리를 조금 지나자 허름한 민박집과 펜션들이 즐비했다. 나는 솔직히 그가 이곳에서 묵기를 바랐다.

니미! 더럽게 춥네. 그때 그 민박집으로 갑시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을 추슬렀다. 그의 말이 나에겐 위압적으로 들렸다. 그는 그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민박집은 승용차로 이십여 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불편한 기억의 거리 때문에 나는 솔직히 주저했다.

눈도 오는데 그냥 여기서.”

아뇨! 그 집으로 갑시다.”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승용차에 올랐다. 별수 없이 나는 운전대를 잡고 눈발을 헤쳐나갔다. 그런데 목표지점까지 얼마 가지도 못하고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이리로 못갑니다. 완전히 얼었어요.”

손 신호등을 든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집으로 가는 도로 앞에 바리케이트가 처져 있었다.

결빙인가요?”

. 모레쯤 풀립니다. 돌아가세요.”

그로서는 낭패였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못 간다잖아. 그만 돌아가지.”

나는 속웃음을 머금은 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진짜 낭패는 지금부터였다.

차 돌려서 입구 쪽에 세워두고, 걸어갑시다.”

결국, 쌍계사 입구 삼거리에서 우리는 차를 버리고, 눈이 펄펄 내리는 시골길을 행군하듯 그 집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길가에는 바짝 말라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놓은 벚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녀린 줄기 위로 듬성듬성 눈꽃을 이고 있는 나무들은 스산하다 못해 황량했다. 얼마 가지 못해 두 발은 꽁꽁 얼고 무디어져 감각이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그는 내내 말이 없었다. 가끔 내가 잘 따라오는지 힐끗거리는 눈매만 날카로웠다.

   
작가소개 : 이인규(소설가)

부산광역시 출생. 2012년 경상남도 산청군으로 귀촌.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내 안의 아이』『지리산 가는 길등과 장편소설아름다운 사람. 2021년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지원사업(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 선정되어, 하동 평사리문학관에서하동 10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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