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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길을 간 사람들
장성춘 기자  |  hdnews9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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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24  09: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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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쁜소식 하동교회 추연환 목사

얼마나 먼 길인지 알 수 없지만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탕자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 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분명히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넘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탕자는 왜 돼지우리에서 굶주리고 있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버지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주려 죽어야 한다. 이런 부담은 악한 영이 준다.

탕자가 돈이 다 떨어져 기생집에서 쫓겨났을 때 곧바로 아버지 집으로 갔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부담스러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담을 피하고 싶어 한다.

어느 날, 눈먼 소경이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고 하셨을 때 소경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길도 모르고 앞이 안보이니까 위험했다. 특히 못에 가서 씻는 것이 소경에게는 너무 두려웠다. 실로암 못에 가서 발을 헛디뎌 못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소경은 실로암 못으로 갔다. 중풍병자를 메고 간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다. 그들이 침상에 누운 병자를 침상 째 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갔을 때 그 집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때 그들은 생각했다. 어려움이 많지만 친구가 예수님 앞에 나가면 낫는다. 그 믿음이 지붕을 뚫고 친구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게 했다. 이처럼 부담 너머에 정말 좋은 것이 있지만 악한 영은 우리 마음에서 느끼는 부담을 이용해 축복된 길을 모두 가로막는다. 사도 바울이 결박된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는 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수많은 로마 시민이 구원을 받았고 로마를 통해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누구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해놓으셨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십계명을 지키고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십자가의 피로 내 죄가 씻어진 사실을 믿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자기 생각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악한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해서 사람들을 죄와 멸망 속에 머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에 맞지 않아도 그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드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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