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코로나 발열체크 하겠습니다~” 이 멘트를 많이 하는 날은 5~6백번 한다.

민원인이 많이 찾는 시간이면 정신 차리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마냥 기쁘고 즐겁다. 사람들을 만나 문화를 나누는 순간이기에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업무시간이다.

오전 11시 40분이면 자동차 엔진을 힘차게 가동해서 하동군청으로 향하는 즐거운 출근길이다. 무슨 즐거운....!! 이냐고 하겠지만 요즘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

지나온 30년의 인생 황금기를 만인의 부러움을 사며 화려하게 무대생활을 누리고 즐겼던 성악가의 삶을 살아왔다.

유학기간에는 붕괴되지 않을 악기를 만들려고 정말 죽을 만큼의 노력한 결과 졸업시험 전 과목을 만점 받아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도 연주생활에 정신적 큰 밑거름이 되었다.

유럽에서 연주하며 여행한 30여개 나라, 100여개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내가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였는지를 60세인 오늘에야 객관적 시각으로 나를 재평가하며 더욱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느끼게 된다.

식욕이 왕성할 때 여행하면서 그 지방의 특식을 먹고 마시며 추억의 앨범에 넘치도록 소장해 두었는데 지금은 틈틈이 그 때의 풍경과 분위기를 회상한다.

요사이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마다 유럽의 자연과 비교하며 얘기를 이어간다.

3년 전에 이 곳으로 귀촌했는데 귀국 초기부터 우리 부부는 ‘캐리어가 끝나는 시점에는 조용하고 살기 좋은 시골생활을 하자’며 늘 얘기했었다.

이태리에서 시골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너무도 좋았기에...... 그래서 지금은 그 꿈을 이룬 것 같아 참 행복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 전에 경험한 친절과 감동적인 일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1997년 5월 어느날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체르비니아노(Cerbiniano)에 있는 한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혼자 할 때의 일이다.

그 도시에 있는 남성합창단의 솔리스트였던 내가 밀라노에 집이 있었기에 400km 떨어져 있는 합창단의 연주가 있는 며칠간 동안은 이 곳에 묵었다.

검정색 바지에 하얀 색 턱시도를 잘 차려입은 노신사 웨이터는 식사 중에 5~6회를 오가며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식사 내내 불편함과 난감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기양양한 자신감과 우월감에 살짝 젖기도.....

노신사분의 런치 서비스는 나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연주회나 강의를 할 때마다 친절해야함을 잊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 때 그 분의 직업정신과 뼛속으로부터 묻어 나온 프로정신의 업무 자세를 보고 느낀 나는 오늘도 만나는 수많은 민원인들과 군청 직원들 에게 얼마나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전달되고 있는지 그 신사를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조율한다.

다른 한 얘기는 국립음악원 재학시절 우리 학교 경비 아저씨다. 하루에 10번을 지나다녀도 한 번도 빠뜨림 없이 전교생과 소통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뼈 때리는 문화충격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어쩌면 지치지 않고 쉼 없이 모든 학생들을 부모처럼 캐어할 수 있는지 그 때는 이해불가였다.

내가 다녔던 뜨리에스떼(Trieste) 지역에는 로마시대 당시에 세운 성당이 지금도 미사를 진행한다.

즉 그들의 60~70세대 조상님들이 짓고 예배했던 바로 그 곳에서 드리는 미사의 경건함은 가히 설명이 불가하며 존경심마저 든다. 그러니 평소 생활속의 안정감은 연출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또한 학교교육에서 자부심과 역사의식으로 잘 훈련되어진 모습들을 곁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받았던 감명으로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이 자리에서 과연 얼마나 느낌을 전하고 있는지 순간마다 점검하게 된다.

특히 여기 군청에 오시는 민원인들의 대부분은 일의 좋은 결과를 희망하며 오시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혹여 일이 잘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어느 정도 갖고 오시는 모습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밝은 인상과 친절한 인사인 듯하다.

반가움과 친절을 외면하는 상황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지만 부드러운 눈인사와 가벼운 목례로도 단란한 가정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고픈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여기 하동에 귀촌한지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3년은 밥벌레로만 살았다. 베짱이처럼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리듬 없는 무한자유는 오선지에 조표와 마디 없는 악보라고나 할까!!

몇 년 전 어깨 탈골로 무거운 것들은 못 들지만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는 일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데 라고 늘 생각하던 차 2월초 하동군청에 하루 6시간 근무하는 일자리가 생겨서 너무 너무 기뻤다.

지금까지 성악가로서 풍요롭고 고급스러웠지만 나와의 정신적 싸움은 순간도 멈출 수 없었던 삶을 살았다면 마치 일일 노동자 같은 생활의 재미를 갖고 싶었다. 정신노동이 아닌 순수 근로 말이다.

성악가의 준비단계와 막상 프로가 되어 연주자의 여정에서 잠시나마 쉼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휴식다운 휴식을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억지와 비상식적인 매너에 마음이 힘들기도 할 때가 있지만 세상 어디에 쉬운 일자리가 있겠나?

하루에 많이 얼굴을 대할 경우에는 5~6회가 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눈인사나 가벼운 목례 없이 그냥 서로 쳐다만 본다면 얼마나 불편 할까?

처음 근무할 때는 불편한 시선이나 어물정하는 태도를 많이 보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지나가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표정들이 많이 밝아졌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신 분들이 많아져서 참 좋다.

내가 할 일이 단순히 발열체크와 손소독 확인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다. 앞서 나열한 모든 것들이 오지랍이 넓어서 하는 행위가 아님을 왜 모르겠나. 대도시의 빌딩 로비, 회사나 공장의 정문 그리고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 정문에는 반드시 경비나 직원이 있다.

순간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분들의 표정이나 친절도가 그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임을 수 없이 보아왔다.

본관 출입구에서 모든 민원인들을 맞이하는 얼굴의 역할을 다해야함이 가장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이라고는 유학 가기전의 3년 부산 시립합창단이 전부였는데 정한 시간에 출퇴근 하면서 급여를 받는 생활이 내 삶에 큰 리듬이 된다는 점에서 다른 영역의 삶을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사람들이 얼마나 각박하게 살고 있는지,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30년 동안 주말에 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주말과 공휴일의 중요함과 쉬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공감한다.

이 일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끼지 않고 현관문을 지나는 모든 분들에게 친절과 미소로 섬기려 다짐하며, 한 국가의 정책을 인체의 동맥이라 하고 사회의 슬로건을 정맥으로 본다면 일상에서 나누는 가벼운 목례와 밝은 미소는 손과 발 끝까지 왕래하는 실핏줄이 아닐까 싶다.

하동군의 심장부인 청사의 좋은 근무 분위기에 좋은 연료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