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미세먼지를 몰아내고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2월에 양지바른 곳의 홍매가 가슴을 뛰게하고, 코를 벌룸거리게 하더니만 어느새 매화천지가 되어버렸다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건너편 강둑에 빼곡하여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간신히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내외가 함께 나섰다. 꽃 반 사람 반이다
내친 김에 구례 산동으로 차를 돌렸다. 아뿔사 산동 초입에서 차들이 진입을 기다리며 늘어서 있다. 노란 산수유가 개울 물위로 떠내려간다. 낙화유수(落花流水)다.
당나라 시인 고변의 시에 나오는 글귀이다. “낙화유수 인천태 ( 落花流水 認天台) 떨어지는 꽃이 강물위로 흐르는 데서 넓은 세상을 알고”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런 동네가 다있을까?
우리 집에서 광양 매화마을 까지는 차로 20여분이고, 구례 산수유 마을까지는 30여분이다.
말이 20분, 30분이지 가는 길가에 온통 매화, 산수유 천지이니 그냥 바로 도착한 셈이다.
하동읍 섬진강 다리에서 매화가 흐드러지기 시작하여 화개장터에 이르고 화개장터에서는 다시 산수유가 흐드러진다. 이게 끝이라면 심장에 무리가 덜할터인데 한 열흘 지나면 섬진강변 백리에 벚꽃이 흐드러진다. 
봄의 절정이다. 벌써 벚꽃들이 꽃봉오리에 물을 올려 가지 끝이 발그레졌다.
이 한달여의 장관과 두근거림이 바로 지상낙원이다. 그래서 우리동네를 ‘외로운 구름 고운(孤雲)’은 별천지(別天地)라 노래했나 보다 “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 (동국화개동 호중별유천) 우리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별천지는 인간세가 아닌 이상향이다. 무릉도원(武陵桃源)과 함께 지상낙원을 일컫는다. 벚꽃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우리를 숨막히게 하고 바람에 떨어질 때는 나의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하늘에서 분홍 꽃비가 내린다. 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벚꽃잎이 흩날려 머리와 어깨에 내려 앉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눈보라처럼 쏟아지는 꽃잎을 온 몸으로 맞는 일은 봄날 행복의 극치이다. 
“물을 건느고 또 다시 물을 건너 여기저기 꽃을 보고 가노라면 봄바람도 강을 건너 스쳐오는데 어느 틈에 그대 집에 이르렀구나” 마치 아름다운 수채화 한폭같은 여유로움도 지리산 꽃길에 사는 나의 즐거움이다. 
갑자기 묘한 생각이든다. 벚꽃에 마음이 있다면 피었다가 곧 바람에 떨어지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시간이 짧다고 혹은 덧없다고 아쉬워하거나 슬퍼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아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꽃이 져야 나무는 새 잎이 나고 성장하며 열매를 맺는다. 꽃이 지는 것은 아쉬움이나 덧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고, 생명의 이어감이다. 꽃은 주어진 시간 동안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지극히 아름답게 피워낼 뿐이다. 
시들고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피워냄을 주저하는 일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름답게 피고 질 수가 없다. 매화가 먼저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이어서 산수유가 피고 벚꽃이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엔딩을 친다.
왜 매화와 벚꽃은 같이 피지 않을까? 산수유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그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봄꽃의 개화 시기는 '기온'에 영향을 받는다. 
식물 생장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온도인 '적산온도'는 생육일수와 일평균 기온을 곱한 값이다. 꽃들은 저마다의 적산온도를 채워야만 꽃망울을 터트린다. '적산온도'가 높을수록 개화가 늦을 수밖에 없다. 매화가 벚꽃보다 빨리 꽃망울을 터트린 건 '적산온도'가 낮아서란다. 과학자들은 꽃들의 개화 시기가 다른 이유로 종족번식과 유전자를 지목하기도 한다.
진화적으로 볼 때 같은 시기에 많은 꽃이 피어나면 꽃가루를 흩날려도 종족번식이 어려워진다. 꽃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꽃망울을 터트리는 시기를 스스로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벚꽃에도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1931년 하동군수 이소영과 화개면장 김진호는 밤늦게 고승의 산방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신작로를 내자는 의논이었다. 당시 김진호 화개면장은 재정형편이 어려워 신작로 공사가 어렵단 입장이었지만 이소영군수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신작로를 내기로 결심한다. 
면민의 부역과 군의 지원으로 신작로를 내었고, 가로수를 심기로 하면서 하동의 여러사람이 협찬하여 벚나무 1200주와 홍도화 200주를 심엇다. 90여년전 두사람의 결단이 오늘의 화개십리 벚꽃이 되었다. 화개십리 벚꽃의 주역 김진호(金鎭灝)면장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삼신마을에 세워져 있다. 김진호면장은 한일합방에 반대한 기개있는 선각자로 당시 경남일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1910년 2월 6일자 기사이다
“하동군 화개면 주재 일본군 수비대장이 지난번에 화개 상.하면 면장과 각 이장을 불러모아 한일합방에 대하여 그 가부를 물었는데 화개 하면의 면장 김진호씨가 답하기를 ‘국민된 자가 어찌 이를 좋아 하리요. 안녕치 못할지언정 원하지 않는다. 귀대장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라 ‘수비대장이 안색이 변하며 양면장과 각 이장을 물러나게 하였다 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