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찬인

한때 중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노래로 드라마 연속극 천로(天路)의 주제가 ‘청장고원(靑藏高原, 티베트고원)’의 일부분이다. 
‘그 누가 아득한 태고의 부름을 가져 왔는가? 그 누가 천년의 희망을 남겨 놓았는가? 아아 나는 한줄기 산과 강을 보았다네. 끝없이 이어지는 한줄기 산과 강을 아라쇼, 그 곳이 청장고원이라네’
하동은 나에게 있어 티베트 고원이다. 하동이 오라고 손짓한적 없지만 나는 운명적으로 이끌려 하동에 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들에게 티베트 고원이 ‘영원한 꿈과 환상’ 이었다면, 하동은 나에게 ‘아득한 태고의 부름’ 이었다.
20여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르기 전에 갓 수술을 마친 집사람의 손을 부여잡고 들어선 하동.
신방촌 도로에 내려서서 아득히 이어오는 섬진강을 바라보았다.
하동에 들어설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며 가슴뛰게 한 강이다. 
우리를 맞이한 강은 너무도 푸르고 깊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동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해가고 있다.
어려웠던 집사람 이순희선생의 건강은 하동 땅이 살려주었고, 포기했던 공직에서의 출세도 하동사람들이 시켜 주었다.
화개면장도 하였고, 하동의 문화와 관광을 책임진 문화관광과장도 하였다.
농업기술센터 소장을 거쳐 지방공무원의 꽃이라는 기획감사실장까지도 하였다.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님의 백수에 가까운 임종도 하동에서 맞으셨고, 떠나시는 길도 하동에서 열었다.
지금은 하동에서 조그만 한의원을 하는 딸 아이의 결혼도 화개골짜기에서 치루었다. 그 딸이 딸 셋을 낳아 하동에서 기르고 있다.
하동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오래 전부터 ‘나는 하동사람이야’ 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랬더니 ‘객지 놈이야’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라모 내가 남해사람 입니까? 산청사람 입니까?’
내세울 것 없던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국가가 1000년 제국 로마를 만들어 낸 저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고대에는 보통 전쟁에서 지면 이긴 나라의 노에가 되는 것이 흔한 경우였다.
하지만 로마는 전투에서 패배한 부족이나 동맹국에게 똑같이 시민권을 줌으로써 패자들과의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공동발전을 모색했다.
로마에서는 외국인이어도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로마로 몰려들어 로마가 조그만 시골국가에서 세계적인 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면 노예도 스승으로 인정하는등 그 때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개방적인 나라였다.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제국 성장의 핵심비결은 개방성이라 지적하였다.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다. 
이를 3T라 일컬으며, 연구에 따라 발전된 도시들은 이와 같은 요소들을 모두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과 재능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기술을 갖춘 곳이라면 당연히 재능있는 이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하나다. 바로 관용이다. 다시 말해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다. 
서로 다른 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도시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한다.
미 서부의 실리콘밸리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미 동부처럼 빡빡하지 않다. 
뉴잉글랜드등 미 북동부 6개주는 아주 오래된 도시답게 학력으로 우선 사람을 바라본다. 그러나 서부는 다르다. 뒤늦게 일어선 도시들이 많고, 다양한 색채를 지닌 이들이 많다. 
즉, 미 서부가 동부보다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이고, 이는 곧 창의력으로 발현된다. 플로리다 박사는 이를 창조도시라 일컫는다.
이제 우리 하동을 보자. 우리 동네는 얼마나 포용적인 사회인가.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단체에서도 어느 조직에서도 손을 들고 이야기하면 '나댄다'부터 '별꼴'이라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만하면 포용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 하동에 사는 사람은 약 5만명 정도이다. 
이중 귀농,귀촌하신 분을 제외하고 또 국내외 결혼 이주자들을 제외하면 하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위 ‘하동사람’은 2~3만명에 불과 할 것이다.
인구의 절반정도가 다른 지역 출신인데도  ‘하동사람’ 운운하며 외지출신의 기를 팍팍 꺽어 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동에 살려고 들어왔다. 
그들중 대부분이 도시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고 전문직업종사자, 예술인들도 많다. 이들을 잘 엮으면 우리 하동의 큰 자산이 된다.
향우회등은 부지런히 관리하면서 우리 땅에 들어와 있는 고급인력은 왜 챙겨보지 않을까?
객지(客地)는 무슨 말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객지는 자기 집을 떠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땅’이라 한다.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연고없는 곳에서 제대로 역할하기가 쉽지않다. 어떤 동네 이장을 뽑는데 객지놈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한다.
그래도 시켜 놓으니 일을 너무 잘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장을 하고 있다.
살아 생전에 ‘객지놈’이 아닌 ‘하동사람’이 되고 싶다.
하동아 하동아 내가 부르다 지쳐 쓰러질 이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