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비 문찬인

엄청 덥다.

점심때 만난 언론인에게 물었다.

최근 하동의 최고기온이 몇도냐? 고.....

“아마 39도까지 치솟았을 것입니다. 곧 40도 넘어설겝니다”

차의 외부온도 계기판이 40도를 가리킨다.

이게 무슨 변고일까?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30도만 넘어서도 불볕더위, 폭염 등 언론에서 난리도 아니였는데... 명색이 동양의 학문을 공부한다고 껍죽대면서도 이상 고온현상을 무어라 꼭집어 설명할 길이 없다.

학문이 얕은 탓이지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벌써 보름 넘어 연일 폭염경보가 내리고 있다.

그래도 짧은 장마에 비가 좀 내린게 있어 작물들이 아직 타지않는게 다행이다.

조선의 정조대왕이 더위를 이기도록 척서단(滌署丹)을 만들어 공급했다고 한다.

청심환은 들어봤어도 척서단은 처음이다.

척서단은 수원 화성을 건축할 때 일꾼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임금 정조의 특별한 지시로 연구개발해서 만든 신약이란다.

더위를 먹어 호흡이 가빠지거나 열이 날 경우 증세에 따라 1정 또는 반정을 물에 타서 마시도록 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18년) 6월 25일에 척서단 4000정을 만들어 인부들에게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엄청 더우니까 매년 한 여름에 치루던 “하동알프스섬진강문화재첩축제”를 무기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초등학교 버전으로 말하면 “참 잘했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엄청 덥거나 엄청 추우면 왕이나 대통령이 백성을 걱정하는 위민가를 불러대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별로 없었다.

축제준비에 들어간 돈, 위약금등 만만찮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내년에도 이 여름축제를 하겠지만 그 길고도 난해한 이름만은 좀 고쳤으면 한다.

하동에, 알프스에, 섬진강에, 문화에, 재첩까지... 하고싶은 말이 많은 것도 병이다.

날이 더우니 별별것이 다 걱정이다. 더위에 객기(客氣)가 몸에 들었나 보다

오지랖 넓은 것도 병이다.

종다린가? 뭔가 하는 조그마한 태풍덕에 소나기도 내리고 한 이틀 시원해지긴 했지만 염천을 식히기에는 태부족이다.

더위도 식히고 계곡도 청소하고 뭇 생명에 단비를 내리는 효자 태풍을 바라는 기풍제(祈風祭)라도 지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냇물도 마르고 계곡물도 말라 작물과 가축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다.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넘는 것은 인체의 온도 36.5도를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폭염을 견디는 인체기관에 한계치를 넘어서면 인체에도 무리가 온다.

인체내부가 외부 고온에 저항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탓에 인체가 허약해진다.

갈수록 온열질환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기풍제나 기우제를 지내 시원한 단비가 내렸으면 한다.

단비는 때맞춰 내리는 비다.

한자로는 급시우(及時雨)인데 양산박 두령 송강의 별칭과 같다.

소나기는 취우(驟雨)다. 소나기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오래 내리면 폭우(暴雨)가 된다.

폭우도 비의 양이 많으면 호우(豪雨)라 부른다.

물동이를 쏟아붓듯 내리는 비는 분우(盆雨)이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뇌우(雷雨)라 한다.

매실 익을 때 내리는 비는 매우(梅雨), 메마른 땅을 적실 정도의 비를 투우(透雨), 사흘이상 이어지는 장맛비는 임우(霖雨)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는 천루(天漏)는 그칠줄 모르는 비다.

불볕더위가 20여일 이어지는 하 수상한 날에 비내리는 하늘이 그리워 떠올려본 비의 다른 표현들이다.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던 1994년 여름, 폭염의 기세를 다소 누그러뜨린 것은 태풍이었다.

그해 7월 26일 한반도에 상륙한 7호 태풍 ‘월트’는 부산, 경남북 지역에 큰 피해없이 100mm 안팍의 비만 뿌리고 빠져 나갔다.

당시 신문은 ‘태풍에 감사장을....단비 환호’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7월24일 38.4도였던 서울의 기온이 7월 26일에는 태풍 덕분에 27.9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근래 5~6년 사이에 제대로 된 태풍 소식이 없었다.

영신봉에서 기풍제(祈風祭)라도 지내면 효자태풍이 올까?

영신봉(靈神峰)은 하동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지리산에 머물고 그 기운이 다시 영신봉을 시발로 옥종, 진주, 사천, 고성, 마산을 거쳐 김해 분산에 이른다.

경남의 등줄기 낙남정맥(洛南正脈)이다.

영신봉에서 시발한 경남의 기상이 낙남정맥을 타고 흐른다.

언젠가 누군가가 천왕봉에 비석을 세우고 ‘경남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하다’ 라고 새겼다 한다.

무식한 탓이다. 경남의 기상은 영신봉에서 시발된다.

그러하니 경남지사와 도내 시장 군수가 모두 영신봉에 올라 기풍제(?)를 드림이 어떠할까?

더우니까 화개 계곡에 예년보다 훨씬 사람이 많을줄 알았는데 그렇치않은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작년보다 못하다고 대놓고 말한다.

경기가 영 아니라는 것이다. 큰일이다.

한철 벌어 일년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이 무더위가 즐거움이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자꾸 비나 바람 부는 이야기만 해서 잘못되었다.

道無形象 天無言語(도무형상 천무언어) 길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하늘은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