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전쟁의 승리에는 반드시 지락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삼국지>를 읽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 속국의 왕으로 그리스 연합군에 참전한 이타가 섬의 왕 오디세우스의 거대한 목마 작전을 읽으며 그 지혜에 감탄도 했다.
10여 년간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도 이 작전으로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을 보며 <삼국지> 적벽대전에 나오는 ‘때마침 동남풍’을 이용한 화공(火攻)작전을 연상도 해봤다.
그리고 바다 위 10년가 표류하고 유랑하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편인 <오디세이>는 그 뜻이 ‘긴 방랑’인데 여기서 페네로프의 직물(Penelop' Web)'이란 말의 유래도 알게 되었다.
페네로프는 오디세우스의 아내요 왕비다. 전쟁터에 간 남편을 끝까지 기다린 정숙한 아내로서 열부다.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구혼자가 나타나 온갖 말로 회유한다.
그러나 오로지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일념뿐이라 외부적으로 어떤 핑계나 구실이 필요해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게 되면 결혼하겠다는 구실을 댔다.
낮에는 배를 짜고 밤만 되면 도로 풀어버린 일을 반복했는데 여기서 ‘끊임없이 일은 하지만 어떤 뚜렷한 결과가 없다.’는 말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한 문학 청년의 지식 축적에 또 하나의 도움이 되었다고 기뻐했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다.
이것만이 아니다. 명색이 영문과 학생이라 이른바 바다소설이랄 수 있는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 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를 통해서는 추상적으로 보아 인생의 모든 노력이 결국은 이렇다 할 큰 실익은 없지만 삶의 본능에 충실하며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하는 한 노인의 강인한 불패정신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다.
흰 고래 <모비딕>을 통해서는 그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하브 선장의 복수심의 화신같은 그 집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또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심청전>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효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소르르 잠들면서 바다를 보지 못한 산골의 소년으로서 용궁 꿈도 꾸어보았다.
그 후 나이가 들어 고전소설을 읽으며 다시 <심청전>을 만났다.
주인공 심청이란 작명이 참 근사하다 싶었다. ‘가라앉을 심(沈)’에다 ‘맑을 청(淸)’이니 그 얼마나 작품 배경이나 내용과 딱 어울리는가 싶어 그 이야기를 지어낸 분의 작명 머리에 감탄도 했다. 또 그런 생각이 계기가 되어 다른 고전소설의 경우도 생각해 보았다. <흥부전>의 흥부는 그 내용대로 끝에 가서는 흉하는 사람이 되고 또 고전소설의 바람쟁이 중에는 공교롭게 이씨조선 시대라서 그런지 가령 이도령, 이춘풍처럼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나오고 반대로 좀 악하거나 고약한 사람 중에는 변학도, 변강쇠처럼 변(卞)씨가 제법 있다는 것을 두루 살펴본 계기도 되었다.
또 중학교 시절에는 <아리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뱃사공 신드밧드의 모험을 읽으며 무한한 바다의 환상적 상상력도 키워 보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바다를 잘 이용한 해양민족이 한때나마 바다를 누비며 세계를 제패한 적도 있다. 먼저 바이킹족이 떠오른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지역의 이 부족은 8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걸쳐 이른바 해양 노마드인으로서 선수와 선미에 용 조각을 단 이름하여 ‘드래곤 보트’를 타고 유럽, 러시아 등을 누비며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신대륙의 발견은 콜럼버스라고 하지만 사실은 놀랍게도 이 바이킹이 500년 앞서 있다. 약 천 년 전에 캐나다의 뉴파운드랜드에 도착하지만 2, 3년 생활은 했지만 영구 정착은 않고 돌아가 버렸다. 이런 바이킹 이후는 에스파냐, 포르투칼 그리고 대영제국이 바다를 자기집 안방처럼 마음껏 누볐다.
바다는 말이 없다. 바다에 의존애 살아오며 목숨을 잃은 무수한 혼령들을 조류의 노래가 위령곡인 양 들리고, 철썩이는 파도가 위령제의 북소리나 징소리로 대신 하는 듯 싶을 뿐이다. 그리고 바다위에 새겨진 정복자들의 이야기는 흔적도 없는 대신 종이책에서나 남아 있구나 싶다. 우리 인류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늘에도 평화, 땅에도 평화, 바다에도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문득 왕년의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