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학동 이정석 훈장

앞에서 자녀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펼치고, 정서를 바르고 풍부하게 가꾸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다. 성장을 이끄는 그런 요소들이 잘 승화되어 표현된 것이 좋은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 음악, 미술 등의 좋은 작품을 감상하거나, 자녀 스스로 그런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도 그런 요소들을 함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청학동 서당에서는 판소리와 시를 교육의 한 과목으로 가르치는데,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정서를 함양하려는 목적도 있다. 학습 과목의 하나인 <추구(抽句)>를 예로 들면, 아이들은 그것을 통해 한자공부도 하면서 시를 익힐 수 있다.
<추구>는 우리 나라 선현들이 쓴 빼어난 시와 중국의 명시 가운데서 뛰어난 시구들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아이들은 그 시구들을 감상하면서 조금씩 눈빛이 달라진다.
이 책에 나오는 시구를 감상해 보자. 아이들 눈빛이 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산고송하립(山高松下立) - 산이 높아도 소나무 아래 서 있고
강심사상류(江深沙上流) - 강이 깊어도 모래 위에 흐른다

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그 산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뻗은 소나무 밑에 있는 것임을 아이들은 상상으로 확인하면서 무릎을 친다. 산 정상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면 이해가 훨씬 빠르다. 강 역시 아무리 깊다 해도 바닥에 있는 모래 위에 흐르는 것이다.
시의 주제를 읽어 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를 읽어 주고 그 주제가 오만함을 경계하면서 겸허함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시의 감상법으로 부족하다. 교육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산, 소나무, 강, 모래, 그 각각의 특성이 새롱누 이미지로 다가온다.
산을 보고 평소에는 그저 ‘산이 있네.’ 하던 아이가 ‘산이 높이 보이는데, 그게 나무 아래 있는 것이네,’ 하며 산의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나무도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산보다 높은 나무’라는 상이 새롭게 그려진다.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그런 표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단순히 산과 나무 가운데 어느 것이 높을까. 하고 묻는다면 대개는 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묻는 것이나 대답하는 것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단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를 대상으로. 산을 산이라 하는지 혹은 나무를 나무라 하는지 그 단어 학습을 확인하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공룡과 참새 중ㅇ 어느 것이 더 크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낮은 나무가 왜 산보다 높고, 높은 산이 왜 나무보다 낮은지는 자연의 관계 속에서 그것도 새로운 생각과 상상력으로 봤을 때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이런 점을 충분히 느끼면서 접근할 때 주제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산과 나무를, 강과 모래를 비교하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이미지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새롭게 만들어 준 경험은, 아이에게 스스로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 시구를 읽고 자극을 받은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시를 쓸 수 있고, 실제로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