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비 문찬인

무신불립(無信不立). 논어(論語) ‘안연편’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民信) 얻는 일이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하느냐고 다시 묻자,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 자공이 다시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또 묻는다.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 자공이 그 연유를 묻자 공자께서 이렇게 말한다. “백성의 믿음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무엇 때문에 촛불을 밝혔을까? 광화문에서 촛불을 댕긴 것은 분명히 국정을 자신의 살림살이인양 농단한 최순실과 이에 부화뇌동한 국가조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세월에 쌓인 각종 부조리와 불통으로 인한 답답함, 파탄지경에 이른 민생이 겹겹이 쌓여 응어리져 있었다. 촛불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대한 규탄이고, 공정사회에 허기진 민초들의 반란이다. 박근혜대통령을 떠받치는 국민의 지지율은 5%로 곤두박질쳤다. 김영삼 대통령의 6%를 넘어선 신기록이라 한다. 국민은 이미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로 촛불을 들었다. 신뢰와 믿음을 정치의 덕목으로 내걸고 세종시 건설을 지켜냈던 대통령이 정작 자신에게 닥친 신뢰와 믿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토해낸 사자후를 들어보자.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1980년 이후 2016년 지금까지 47년여 세월이 흘렀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들의 이름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대통령이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문민정부 대통령 모두가 권력을 사유화 하고 부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왜 하나같이 이렇게 됐을까? 왜 정권만 잡으면 그 정권이 영원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국정농단과 부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질 못했을까? 혹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순’이라고들 말하지만 이게 제도와 체제상의 문제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혹은 그들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적 문제로 이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불감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한다. 국가의 원수이며 국가와 헌법의 수호자이다. 아울러 국정의 최고 통합 조정권자이다. 그런데도 역대의 모든 대통령이 그 의무와 권위를 배신했다. 국가발전과 국민행복 추구의 혼을 상실한 것이다. 지난 47여년의 세월 동안 국가의 혼이 살아있기는 하였을까? 국가의 혼은 국민과의 공감이며, 국민적 의지를 실현시키려는 살아있는 정신이다.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승만 정권, 잘살아 보자는 박정희 정권 까지만 해도 나름의 공감과 국민적 일체감이 있었지만 1980년 이후 부터는 대통령이 국민과 멀어지기 시작한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탱크로 정권을 잡았으니 국민과의 일체감이니 국가적 혼이니 할 것조차 없지만, 민주화의 대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열화 같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측근의 부패가 국가의 혼을 갉아 먹었고, 가지지 못한 자의 입장에서 기득권에 대항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측근 부패와 진보와 보수의 분열된 프레임으로 불행한 종말을 맞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광우병 파동과 측근 부패로 국가의 혼을 들먹일 자격이 없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에 와서는 일개 개인에 의해 국정이 농단 당하고,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에 식물대통령이 되고 만다. 역대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들은 불과 5년 후에 들통날 수 있는 짓거리를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조차 없다. 이때뿐이니 우짜든지 한몫 챙겨야 한다는 패거리 근성 탓 일까? 누가 말한다. “이참에 나라를 확 바꾸어야 한다.” 혁명적인 국가 대개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어떤 정치 지도자 한분이 ‘제7공화국’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 내용의 구체적 사항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이대로는 안 된다.’다는 데는 그 뜻을 같이 한다. 대통령의 권한 분산과 국회의원의 수, 임기제한,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등 1987년 체재를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지난 12일 100만의 촛불시위는 ‘고요한 폭풍 같다.’ 거대했지만 평화로웠고, 집권세력이 농단하고 유린한 준법이 있었다. 하지만 터지기 직전의 포도 알갱이처럼 탱탱하게 영근 분노가 폭발 직전처럼 보였다. 누적된 분노는 최순실 세력이 소탕된다고 해서 가라앉을 거품 같은 게 아니다. 누가 집권하던 국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통일된 나라, 공정한 사회,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가대개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