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사! 먼저 '2016년 한국시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한국시학상'이라 함은 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수상의 영예를 안고 싶어하는 한국 시단의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시인이 처음으로 낸 시집은 <시는 꽃인가> 하는 시집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요.
그 시기는 당신이 대학에서 강의하기 직전에 진주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짐깐 봉직을 할 때 일 것입니다.
그 출판식에는 강희근 교수를 비롯한 진주의 문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새내기 시인을 격려하는 뜻깊은 문학인의 밤이였지요
문학과는 거리가 먼 나는 우연히 초청을 받아 참석은 하였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하동이라는 동향인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 외에는 특별한 감동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술자리가 무르익는 뒷풀이 행사장에서는 상황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시와 수필 연극등 각 장르에서 펼치는 예술인들의 질펀한 대화와 노래 그리고 연신 파안대소의 분위기가 연출되는 자유로운 토론과 주장들은 마치 구름과 바람의 영혼들이 모여 싱그러운 생명을 잉태해 내는 듯한 열정적인 모습들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시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일은 처녀시집을 진주에서 낸 인연으로 신부감도 진주의 아름다운 규수를 맞이할 수 있었다는 사건이지요.
당신이 진주를 떠나시고 난 후에는 오랫동안 적조하였습니다.
동명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시고 난 후 나의 고향에 소재하고 있는 폐교된 청암초등학교 상이분교를 대학의 여름학기 연수원으로 활용할 때 두어 번 만나고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정박사가 문교부의 사학분쟁 조정위원으로 피선되었을 때 부산에서 만나 부산대학교 양왕용교수와 함께하는 부산의 시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 참 마산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김현철 선생이 주선한 춘부장이신 정원용 교장선생님의 숭고한 교육정신을 기리는 '원용 장학회'행사장에서도 몇 번 만났나요?
그 자리에서 김현철 교장으로 부터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라는 시집을 건네받았습니다.
나는 그 시집의 내용은 보지 않더라도 책 제목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함축한 참으로 멋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무언의 목소리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자- 신의 말씀일 것이라고 스스로 해석 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바람결에 소식은 들려왔습니다.
고향에서 정 시인의 시비가 건립되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핵심 임원 등으로 눈부신 활약한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만물은 유전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통이 손쉬운 카카오톡이라는 세상의 그물망의 통신으로 빠르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고도 하는 바이칼 호수와 블라디보스톡을 여행하는 감정을 짧은 시의 형식으로 보내 주셨지요. 그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간단한 시어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드높은 기상과 불후의 명작인 영화 '닥터 지바고'를 연상케 하는 충분한 의사전달이 가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니 놀라운 일이지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는 정 시인에 대한 잔영의 넋두리만 늘어놓았네요.

다시 한 번 수상의 영예를 축복합니다.
2014년도에 한국시학상을 수상한 오순택 시인은 그의 블로그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이런 구절을 소개하였습니다.
"제대로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여우가 일곱 개의 별을 떠돌고 있는 어린 왕자에게 한 말입니다.이 구절은.
순수와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오순택 시인 뿐 만 아니라 한 평생 <침묵보다 낮은 목소리>로 사물을 꿰뚫어 절대자의 음성을 듣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여온 당신의 시심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수몰이 되어버린 고향- 청암 고래실 하동호수가에 거처를 마련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지친 몸으로 세상을 방황하다가 어머니의 젖내음을 맡고자 이곳에 왔지만 고향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튜시화 시인처럼 사무치는 그리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내 집 앞에는 유년 시절에 매미잡고 술래잡기 하면서 놀던 200여년이 된 팽나무가 나의 시들은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지난 무더운 여름에도 나를 시원하게 해 주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노거수(老巨樹)의 늠름하고도 두터운 초록 빛깔에는 어린 나무들이 따를 수 없는 체험의 세월과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서울의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은 1995년 시세로 수천억의 재산이었습니다. 그 주인이었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은 운영권을 법정스님에게 넘기고 대한 불교 조계종 송광사에 시주하여 말사로 편입, 길상사라고 하였습니다.
수천억의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하셨던 말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지요.
"나의 전 재산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훌륭한 시인의 시 몇 줄의 가치만도 못하다."
그 시인은 한평생을 그리워하던 천재시인 백석을 두고 한 말이지요.
우리 정순영 시인도 <시는 꽃인가>라고 출발한 마음은 이젠 <시는 열매인가 뿌리인가> 까지 그 지평이 한없이 뻗어나가 수많은 ' 대원각'의 주인 '자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더욱 훌륭한 시인이 되기를 응원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청학동사랑방 지킴이 양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