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多 이유식 수필가. 평론가

인간은 약한 바람이건 선한 바람이건 언제나 바람을 안고 살아야 하기에, 수많은 종류의 바람 이름이 생겨났다. 불어오는 방향이나 불어오는 곳 또 그 세기의 정도에 따른 각가지 이름은 열외로 하더라도 각가지 무역풍과 각가지 계절풍도 있다. 심지어 좁은 틈이나 구멍으로 들어오는 몹시 차고 세찬 황소바람에다 지난날에는 가마타고 가면서 얼굴 내밀고 쐬는 가맛바람도 있었다.
이 수많은 이름들을 보며 참으로 신기하게 느낀 것은 투박한 한문 투의 이름대신 순수한 우리말로 된 이름이 많은 것에 나는 놀라고 또 놀라고 있다. 참 예쁘고 감칠맛 나는 이름 앞에 나는 그야말로 ‘바람이 들고, 바람이 났다’고나 할까.
봄 동풍의 샛바람, 가을 서풍의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 여름 남풍의 마파람, 겨울 북풍의 된바람 또는 높바람이나 높새바람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바람의 세기에 따른 실바람이나 산들바람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뭇잎이 살랑거린다는 남실바람, 종잇장이 난다는 건들바람 등이 나를 감탄케 하고 있다.
이는 농부나 어부와 같은 일반 서민들이 일상에서 늘 접해야 하는 것이 바람이었기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듯 자연스럽게 굳어진 우리말임은 사실이다. 아니 이런 이름 이외에도 더 생각해보니 고추바람도 있고, 꽃샘바람도 있으며, 좀 살벌하긴 하지만 칼바람도 있다.
그 뿐만 아니다. 바람은 속담이나 관용구로서도 일반 언어생활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바람은 문학적으로도 그 상징성이나 은유성이 많은 소재나 제재가 되고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각자 나름으로 분명히 주어진 상황에 따라 바람의 인생론 적 은유를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순풍을 만났다고 좋아도 했을 것이고, 역풍을 만났다고 잠 못 이루는 고민도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돌풍이나 광풍을 만났다고 자기 운명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구나 생각하며 길고 긴 한숨도 쉬고 또 쉬었으리라. 이 모두는 좋건, 궂건 바람, 바람, 바람의 넋 탓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내 귀에는 또 다른 바람 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영국의 19세기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쓴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바람소리다.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이 세상에서 맺지 못한 원한의 그 사랑을 풀기 위해 다시 원혼이 되어, 그 황량했던 요크셔의 ‘폭풍의 언덕’에서 밤낮으로 쌩하게 불어대던 그 바람과 함께 바람의 넋이라도 되어 나타나는지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