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우린 매일 거울을 보며 살아간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물론 차이점이 있다면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거울 보는 횟수가 좀 다를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고 하루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평소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살아간다는 증거다. 당연히 나도 그 중의 하나다.

요 근래 나이가 들어가면서 거울을 보며 느끼는 게 하나 있다. 얼굴이 상당히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수년전부터 검버섯 서너 개가 조그맣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 어느 날은 급기야 엄지손톱만 해 지기에 이르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게 검버섯이었다. “아, 나도 이렇게 하루하루 노인다운 노인으로 변해가는구나.”

그러나 나는 늙어가는 것에 대해 그리 민감한 편은 아니었다. 유한한 우리네 인생에 대해 아쉽다는 생각이 크게 든 적도 없고, 노화 현상에 대해서도 그리 호들갑 떨지 않고 순응하며 지내왔다.

이는 그동안 생로병사의 정한 이치에 큰 스트레스 없이 살아왔단 이야기다. 이랬던 내가 엊그제는 피부과 병원에 가서 얼굴의 검버섯과 점을 빼고, 얼굴 가득 테이프를 붙이고 돌아왔다. 남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이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나이에 내가 그랬다. 하늘이 놀랄 일이다.

사실을 실토하자면 그동안 내 얼굴에 토를 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점을 빼라는 권유였다. 친한 동료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압력은 더 없이 컸다. 언젠가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진 내가 당신 뜻대로 살아줬다면, 이제부턴 당신이 좀 내 뜻대로 살아주면 안될까요? 뭐든 내가 하자는 대로 좀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껏 서로 뜻 맞춰 살아온 줄 알았는데, 아내는 다 남편인 내 뜻대로만 살아줬다고 했다.

생각하니 좀 억울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대답은 해야 했기에 그냥 근성으로 그러겠노라 했다. 그러나 그럴 순 없는 일이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 집 가장이요, 나이도 한참 많은데다 인생 경험도 훨씬 많다고 생각되는 내가 어찌 인생 후반을 아내의 뜻대로만 살아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증거가 이번에 아내 뜻을 따라 뺀 얼굴의 점이다. 내 생각도 고집도 이젠 많이 힘이 약해진 게 틀림없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가정이 화목할 때 모든 일이 다 잘 이뤄진다는 뜻 아니던가? 그러나 ‘가화(家和)’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단순하지가 않다. 얽히고설킨 가족들 간의 권유나 승낙, 사랑과 배려 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의 행복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요, 초라하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나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내 얼굴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아내의 정서에까지도 가까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점을 빼고 난 뒤의 ‘훤한’ 내 모습은 곧 아내의 흐뭇함 내지는 행복하고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젠 내 얼굴의 ‘잡티’도 제거됐으니, 이것으로 내 만년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가화(家和)’를 이뤄 갈 양분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하나를 들어주고 나니 슬며시 걱정되는 게 또 하나 있다. 다음으론 훤한 앞머리에 머리칼을 심으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제발 거기까지 가진 말았으면 좋겠다.

행여 길을 가다, 저를 보고 긴가민가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노파심에서 말씀드린다. “예, 제가 점을 뺐습니다. 몰라보게 젊어 보이더라도 헷갈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혹시 누군가가 저를 미혼 총각으로 착각하시거든, 전 이미 결혼한 사람이요 처자식에 손주까지 있는 몸이라고 전해주셨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