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된다. 그 시작은 언제나 똑 같은 반복이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나는 덜어내는 일로 시작하고 아내는 보태고 덧붙이는 일로 시작한다. 덜어내는 일이란 면도요, 보태고 덧붙이는 일이란 화장이다. 남자 여자가 세상에 다르게 태어났다고, 인생살이도 어쩌면 이렇게 매일 다르게 시작해야 하는 건지 문득 쓸데도 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내가 덜어내는 일도, 아내가 보태고 덧붙이는 일도 따지고 보면 결국 아름다움을 위한 일이다. 아름다움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어쩜 다른 분들도 대부분 우리 부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탓에 아침마다 하는 면도와 화장은 너나없이 모두에게 더 이상 생각하고 고민할 것도 없이 매일 자동적으로 반복하는 삶의 루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덜어내든 덧붙이든 이것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라면, 예술 분야에서의 ‘조각’과 ‘소조’ 작업 또한 면도를 하고 화장을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각은 부단하게 덜어냄으로써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소조는 반대로 반복적으로 붙여가며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렇듯 아름다움을 창조해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님에 틀림이 없다.

덜어내어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하고, 보태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도 똑 같고 예술작품도 똑 같다. 서로 상반된 작업을 통해 각각의 방식으로 각자가 바라는 궁극의 목적을 꼭 같이 이뤄간다. 이런 다양성이 우리를 더욱 재미있게 해 주고 단조로울 수 있는 삶의 순간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가감(加減)’의 이치로 만들어가는 아름다움과 그 과정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영역에서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엔 부단하게 뭔가를 모으고 채워가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도 있지만, 반면 가진 것의 일부를 덜어내 가면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인생도 있다. 대다수는 전자의 방법이 정답이라 여기며 계속 더 많은 걸 채우려 하지만, 세상엔 또 후자처럼 덜어내고 베풀면서 그것으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가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모습들일 것이다.

사십 대 초, 한 때 소원이 하나 있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에서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들 방이 따로 있는 집에서, 좀 여유 공간이 있는 집에서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끝내는 소원을 이뤘다. 지금 그런 집에서 살고 있기에…. 따뜻한 물도 나오고 애들 방도 있다. 그러나 집은 역시 좁기만 하다. ‘저장강박’ 때문에 뭔가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채워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공간이 없다. 여백의 아름다움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 채우는 ‘소조’가 아니라, 덜어내는 ‘조각’과 같은 방법으로 삶의 공간을 만들고 여유를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 개념에 가까이 닿아 있다. 스님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고 정의하셨단다. 말씀이 가슴을 파고든다. 원석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고 쪼아내어 멋진 작품을 만들어 가는 ‘조각’ 예술을 떠올리게 한다. 나훈아 가수는 ‘공(空)’이란 노래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살다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아직도 나의 삶은 ‘보태는 예술’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으론 ‘덜어내는 예술’을 실천하고 싶은데, 욕심 때문에 아직 ‘미니멀 라이프’는 그저 바람일 뿐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그저 ‘버킷리스트’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해를 넘기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느리더라도 이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노력하리라 다짐해본다. 깊어가는 가을, 한 닢 한 닢 떨어지는 낙엽에서 또 뭔가를 배우는 하루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