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신문에 실린 어느 의사의 글이다. “우리 대다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매순간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휴대폰 배터리나 차의 기름이 바닥날 때까지 혹사시키라는 것과 똑같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상에서 전력질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기록을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몸이 부서져라 달리기보단 20% 정도 힘을 빼고 여유롭게 달려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 글은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에게 좀 여유롭게 살기를 권면하는 내용이다. 충전할 시간도 없이 늘 최선으로만 살아가다가 인생이 방전되어버릴 것을 염려한 말이다. 의사는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기보다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적잖게 공감되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설득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던 듯하다. 누군가의 댓글을 보니….

댓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그랬으면 선생님은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무조건 힘 빼기보다는 100m 달리기와 마라톤을 적절히 섞어” 가며 살아야 좋지 않을까요? 두 분의 의견 교환을 지켜보며 난 누구 의견에 더 공감이 가는지 잠시 자문(自問)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어떻게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려 본다. 과거에 대해선 따질 게 없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만…. ‘역미휴부중(力微休負重)’, ‘힘이 부족하거든 무거운 짐 지지 말라.’

우리는 잘 안다. 인생에 정답이란 없음을…. 그저 각자가 처지에 따라 풀어가는 ‘해법(解法)’만이 존재할 뿐임을…. 해법이 다르다 하여 틀린 인생도 아니다. 틀렸다 하여 애초에 그 길을 원했던 것도 아닐 수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각자의 맞춤형 행복 찾아 살아가면 될 뿐이다. 어쩌다 원하지 않던 길을 걸어 후회가 된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운명을 얼싸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린 대부분 부자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때문에 정도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기복(祈福)’ 심리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치면 행복을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아무렇게나 살면서 부자가 되길 원한다면 양심 없는 생각이다. 땀 없이 큰 복을 빈다는 건 한참 빗나간 기복 심리다. 뼈가 휘도록 노력해도 맘대로 잘 안 되는 게 세상사요 현실인데, 힘들지 않게 거부가 되고 행복을 찾겠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극치가 아닐지….

돌아보건대 난 지금까지 위 의사의 말처럼 방전될 것도 두려워 않고 ‘전력질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현실은 내게 늘 희망 고문으로 답할 때가 많았다. 쉰 살이 넘도록 안정된 직장도 얻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도 불행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늘 ‘다행’이라 생각했고 ‘감사’하단 생각뿐이었다. 이런 나의 ‘다행’과 ‘감사’ 마인드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 중에 최고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최상의 행복 DNA이라 생각한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다행’이란 단어가 있다고 했다. ‘다행’은 둘 사이에 끼어 있지만, 99% 행복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무슨 안 좋은 일을 당해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더 큰 불행에 비하면 ‘그래도 다행이다.’라고 한 마디 해 놓고 보면 위로가 된다. 재수 없다고 못난 운명이라고 한숨짓게 하기 보단 또 다시 건강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게 해 준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늘 주문처럼 흥얼거리던 말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이다.

나도 이젠 나이 일흔을 향해 가고 있다. 공자님은 일흔을 ‘종심소욕(從心所欲)’의 나이라 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不踰矩)’ 범위 내에서…. 여러 의견들을 종합하여 결심해 본다. 나도 이젠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라면 내려놓고, 소화 가능한 짐만 지고 조금은 가볍게 살아가리라고. 전력질주하기 보단 20%의 힘을 빼고, 단거리 장거리 달리기도 완급을 달리해 가며,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가을이 짙어간다. 모든 이의 발걸음이 가볍기를 기원한다.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