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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한 많은 비운의 역사를 뭍으시고 영면하신 내 장인어른 전(前)에
하동정론신문 하동정론신문  |  hdgm9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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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9  10: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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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하동정론 창간 제13주년 기념일을 맞았다. 또 추석명절 연휴를 며칠 앞두고는 오늘(18일 오후)부터 모레(오후 2시까지) 한가위 앞둔 시점에서 저녁 늦게까지 혼자 사무실에서 400호 신문마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응 왜 나 사무실인데..../ 아버지가 조금전에 돌아 가셨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동생)한테서 조금전에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지금 막 돌아 가셨대/

전화를 받은 시간이 저녁 810, 그나마 아침부터 하루종일 컵라면에 햇반 하나를 먹은 것이 전부인데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어째야 하냐?/ ? /나는 지금 내일부터 모레 오전까지 신문 마감을 해야 되는데/ 너도 이 밤중에 차도없고 강원도까지 간다는 것은 불가능 한데 어쩌면 좋냐고?/

한동안 말이 없었던 아내는, /일단 애들한테 연락을 먼저 할 것이니까 생각을 좀 해보자/고 했다.

연세가 많으신 장인장모님 두분이 모두 치매로 고생을 하고있어, 오랜기간 힘이 들었을 처남에게 전화를 했더니 시신 검안실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긴다고 한다.

치매가 있는 장모님은 어쩔수 없이 잘 달래서 집에 있도록 했다는 말도 했다.

같이 치매를 앓고 계시는 장모님 등 주변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틀만에 출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가 갔다.

나는 늘 발행인 칼럼을 꼭 마감하는 당일 날 급하게 쓰는 버릇이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수십년을 다짐 했건만 도무지 이것은 고쳐지지를 않는다.

그러니 칼럼 하나를 쓰는데 보통 30~40분가량이 걸린다. 아무튼, 진즉에 썼어야만 했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넘기고 또 넘긴 것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그것은 내가 여지껏 장인어른으로부터 들었던 과거의 참혹했던 사실을 소설로 내어놓고 싶었는데 이에 필요한 자료를 진즉에 더 챙겼어야 되는데 갑작스런 부고 소식에 아픔과 함께 아쉬움 맘이 크다.

일제 강점기 1928년에 충청북도 제천에서 쌀이 아닌 잡곡들 보관 통의 밑바닥이 늘 닳아진 가난한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배운 것은 자연이 주는것들 뿐이었다.

그래도 팔 다리를 당신의 힘으로 움직일수 있을만 해서부터 숲속에서 나무를 하는 수업을 받았고, 밭에 자갈을 골라내는 괭이질에 연일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거기다 한참 커가는 어린 아이의 굶주린 배는 옥수수 가루나 송구껍질로 때우다 운 좋으면 감자 몇알로 채우는 날에는 아주 든든 했었다.

그렇게 근근히 오로지 산천을 생활과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의지해 살아오던 194581518세의 나이에 조국의 해방을 맞았고, 대한민국 이름을 되찾아 19461월에 대한민국 군대의 모체로 국방경비대가 창설이 되면서 19살의 나이에 입대를 했다.

그렇게 군 복무를 시작한 것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아귀다툼을 하던 정치세력 집단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입에 풀칠이나 하겠다고 시작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입대 후 장인어른은 1947년 제주 4.3사건, 1948년 여순사건, 19506.25동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불거진 각종 사건의 현장은 모두를 누비고 다녔다 한다.

6.25동란때는 밀고 밀리는 참혹한 현장에서 미군 한사람을 구출해 손을 잡고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포화속에 앞만보고 한참을 달리다 나중에 보니 손을 잡았던 미군은 없고 그의 왼쪽 손하고 어깨까지만 덩그러니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는 말로 그날의 참상을 설명 했었다.

그렇게 군생활을 1953년까지 참 험난한 세월을 목숨을 걸고서 할만큼 했는데 당시 이등중사에서 상사를 달아 준다는 것을 포기를 하고 전역을 했다는 이유에서 필자의 기억으로는 지금껏 정부에서 받은 것이라고는 땡전 한푼 없었던 것으로 안다.

무엇을 몰랐건 속였건 그렇게 청춘을 날려버린 장인어른은 한번의 결혼을 실패하고는 경기도 포천시 일동으로 이사를 와 그곳에 살면서 당시 강원도 정선이나 태백 등으로 탄광일을 다녔다.

그 과정에 얻게 된 것이 지금의 내 장모님과 마누라 그리고 하나있는 처남이다.

나는 국방부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현역 직업군인으로써 그것도 결혼도 하기 전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고, 이 나라의 순국선열 내지는 참전 용사들에 대한 복지정책에는 심각한 오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1990년경 어느날에는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에서 이동갈비와 막걸리를 처먹고 일동면을 지나던 경찰 간부가 탄 차량이 길을 걸어가던 장인어른을 그대로 쳐 하천에 떨어진 것을 실어다 인근 군병원 앞에다 내려놓고 뺑소니를 친 사건도 있었다. 아내를 알게된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연락할데는 필자밖에 없었던 처지의 아내가 연락을 해와 포천시 일동면 소재 군 병원 앞에 버려진 장인어른을 챙겨야 했는데 결국 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한 그 경찰 간부들과 차량은 찾지를 못한 기막힌 사건도 있었다.

.한 맺친 비운의 역사를 뭍으시고 아니 어쩌면 그것들을 기억속에서 지우기 위해 치매를 선택 하셨을 지도 모를 장인어른 심재학 아버님의 명복을 못난 사위가 빕니다.

덧붙여, 급하게 발행인 칼럼을 쓰고 장인어른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이라도 뵈어야 하겠기에 부득이 하루를 앞당겨 마감을 하고는 밤중에라도 강원도 땅까지 달려 가야만 할 상황인지라 혹여 편집된 지면에 문제가 있더라도 넓으신 아량으로 양해를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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