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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맛과 멋 그리고 이사람(86)임진왜란 63전63승 불패의 영웅 충의공 정기룡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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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8  2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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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금남면 경충로 503-14 정기룡 장군 유허지 경충사를 찾아

위패와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에, 사당과 생가는 경상남도 하동군에

   
 

 

당초는 정기룡 장군의 위패와 묘소가 있는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까지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5월부터 계획했던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기획취재가 부득이 7월로 미뤄지면서 장군의 유허지가 있는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소재 경충사와 생가를 방문 취재했다.

   
 

경상북도 상주시의 자료에 따르면, 사벌면 금흔리에 있는 충의사(忠毅祠)에 정기룡 장군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여기서 충의(忠毅)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구국의 장군 정기룡의 시호이다.

충의사는 처음에 약16규모의 작은 사당으로 설립이 됐다가 1978년 호국선현유적지 정화사업을 통해 총13209의 부지로 확장 정비됐다.

사당을 비롯해 전시관, 내외삼문, 기념비, 관리사무소 등이 조성되어 있고, 전시관에서는 보물 제669호로 지정된 교서, 교지, 신패, 옥대를 비롯해 동산문화재로 등록된 교지 19, 매헌실기(梅軒實記) 판목 58판 등이 있다.

   
 

정기룡 장군의 묘소와 신도비는 충의사에서 동쪽으로 약 8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1974년 신도비, 묘소와 함께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됐다.

충의공 정기룡 장군은 1562년 음력 424일 명종 17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증좌찬성 정호(鄭浩)의 아들로 태어났다.

1580년 선조 13년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조의 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90년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립의 휘하에서 일하였고, 다음 해 훈련원봉사가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시기에 별장으로 승진해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의 휘하에서 종군하면서 거창 전투에서 일본군 500여명을 격파하고, 금산 전투에서 직속상관인 조경을 구출했다.

이후 곤양의 수성장이 되어 일본군의 호남 진출을 막는 데 일조 했으나 사천 전투에서 명나라 군과 연합작전 중 총사령관 마귀의 무리한 작전으로 연합군이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패배했다.

이어, 상주 목사 김해의 요청으로 상주 판관이 되어 상주성을 성공리에 탈환하고, 이후 진주 목사 김시민을 도와 진주성 부근에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주둔하여 왜군을 견제함으로써 진주대첩에도 기여하는 등 계속하여 공을 세워나갔다.

1593년 전공으로 회령부사에 승진 되었고, 같은 해 왜적에게 왕자를 내준 반역자 김수량 등 16인을 효수하였으며, 1594년에는 상주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정유재란 때에 고령에서 적 장수를 생포하고 병마절도사가 되어 일본군이 철수한 성주, 합천, 초계, 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 하였으며, 1601년에는 울산부사에 올랐고 1610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1617년에는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라 삼도수군통제사와 겸직했다.

   
 

장군은 1622년 통영 진중에서 병사했으며, 상주 충의사에 배향 되었고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경충로 503-14(상촌마을)에는 사당인 경충사(景忠祠)가 있고, 상촌마을 당산골 진양 정씨 사당 아래쪽 100m지점에 정기룡 장군의 생가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정기룡 장군의 어머니는 홍역에 걸려 출산 중 죽게 되는데, 가족이 염을 하던 중 그의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기가 있는 것을 보고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살기가 느껴지더니 사흘 후 어머니는 사망하고 아이가 태어나 이 아이가 정기룡이라고 한다.

정기룡은 태어날 때부터 우렁찬 울음 소리를 내고 하늘엔 무지개가 떠 마을 사람들은 영웅이 탄생한 것이라 믿었다. 정기룡은 어려서부터 비범하고 용감하였으며,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강씨 부인을 잃는 슬픔에도 용감히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강씨 부인을 잃은 후 다시 결혼하게 되는데 그의 부인(권씨) 또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며 나이가 들수록 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권씨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어느새 노처녀가 되고 정기룡 장군을 만나고 나서야 정기룡 장군과 결혼하겠다고 하였다. 정기룡 장군은 전란 중의 상황과 그의 옛 부인을 떠올리며 고민했지만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의 부인(권씨)은 말을 키우고 있었는데 날쌔고 힘이 세어 정기룡 장군이 타고 다녔다고 하며, 이 말이 장군이 공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기룡 장군의 본명은 정무수로 정기룡이 된 사연은 이렇다. 정무수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게 되는데, 그 당시 임금인 선조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종각에서 용이 자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종각에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 했더니 정무수였다고 한다. 그가 무과 시험에서 무용이 출중하여 선조가 기룡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장성춘 대표기자. 블로그naver.com/ hdmews9001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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