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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하동의 맛과 멋 그리고 이사람(84)유성준 명창의 고향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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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1  16: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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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의 거장(巨匠) 유성준 명창의 발자취를 찾아서

일부 전라남도 구례군전라북도 남원시 등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

1874(고종11)327 악양면 중대리에서 태어나 1949년 고향에 영면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에 있어 거장(巨匠)이라는 말 조차도 부족할 유성준·이선유 두 명창으로부터 파생되는 엄청난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후대 우리 하동사람들과 관련 행정의 거듭되는 실수에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여곡절(迂餘曲折)의 결과에서 찾게 된 판소리 동편제의 전설적 인물 유성준 명창과 이선유 명창 두분의 발자취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악양면 중대리에는 현재 유성준·이선유 명창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그런데 당초 건립 당시에 하동군은 엉뚱하게도 체험관이라는 명칭을 정하면서 두분 명창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몰라 주더니, 근자에 들리는 말로는 정말 터무니 없게도 국악원이라는 명칭이 떠도는 것 같아 모르면서 구태여 아는체 하려는 그런 행정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려스런 부분으로,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 보면 여전히 잘못된 정보가 뜬다.

이는 사실을 호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우리들의 후세를 위하여 확실하고 분명하게 해 둬야 할 부분으로 필자(筆者)는 과거 유성준 명창 묘소찾기에 이어 또한번의 작은 노력을 기우려 본다.

대한민국 판소리 명창 유성준 선생의 고향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분명한 것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이다.(200812월 명창의 묘소를 찾았을 당시에는 전해져 오던 구설(舊說)에 따라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염파리 54번지에서 출생해 하동군 악양면으로 이사 온 것으로 보도가 되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인터넷 검색창이나 제대로 된 자료나 근거에서 기반하지 못한 일부의 주장이 안타깝지 않을수 없다.

         유성준 명창의 고향을 전라남도 구례군이나 전라북도 남원시 등에서 고집하는 일부의 주장은 말 그대로 그들만의 주장일 뿐이다.

유성준 명창은 1874(고종11) 327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서 아버지 유경학과 어머니 장덕옥 사이에 큰아들로 태어났다.

13세 때 아버지를 따라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이주해 당시 시대의 명창 송우룡(宋雨龍)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웠다. 또한 당대 판소리 이론의 대가인 김세종 선생에게 지도를 받아 실전은 물론 이론에서도 뛰어나다는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1902(고종39) 고종 황제가 전국 창악인들의 관장 기구로 조직한 협률사에 들어가 활동했으며, 당시 협률사에는 전국의 명인과 명창 170여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협률사가 해체되자 유성준 명창은 전국 순회공연과 방송 활동을 하며 판소리 앨범을 다수 발표하였다.

1928년에는 관북 수해구제 명창 대회와 일본 축음기 회사 주최 전조선 명창 연주회에 출연 하였고, 또한 경성방송국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오케(Okeh) 레코드와 적벽가’·‘수궁가등을 발매하기도 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혹심해지자 활동을 접고 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후진 양성에 힘썻는데 명창의 대표적인 제자로 임방울·강도근·박동진·정광수·김정문 명창 등 다수가 있다.

유성준 명창은 적벽가수궁가를 잘 불렀는데, ‘수궁가중에서도 자라가 토끼를 만나는 대목이 뛰어 났으며, 당시 기록에는 유성준 명창이 창을 할 때면 관객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고, 판소리를 민중 예술 장르로 승화시킨 그의 소리에 고종 황제와 대원군도 크게 감동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유성준 명창은 1949년 고향인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명창의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 있다.

유성준 명창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편제 판소리의 제왕으로 일컬어지며 추앙 받았지만 정작 고향인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오히려 많이 알려지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유성준 명창은 영면하신 후 악양면 상신대 어느 산 기슭 공동묘지 한켠에 볼품없이 붙였다.

더구나 이후에는 고향 땅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서 조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지고 조용히 뭍혀졌다

 그러다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의 거장(巨匠) 유성준 명창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다시 끄집어 내게 된 계기는 하동의 소리꾼으로 성창당 구약방을 운영하고 있는 구태수 전()하동문화원 부원장으로부터다.

유독 판소리를 좋아하던 구태수 부원장은 직접 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라북도 남원을 왕래하게 되었으며, 그러던 과정에 우연한 기회에 스승인 유영애 명창(조상현 명창의 제자)의 남편 지강훈 선생으로부터 하동 악양에 유성준 명창의 묘가 있다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혹자(或者)는 무심결에 넘길수 있을 문제였지만 구태수 부원장은 소리꾼으로써 결코 이를 소홀하게 넘기지 못하였고 이후 친구인 고()이연호 하동놀이패 들뫼의 초대회장과 협의 후 당시 하동신문 편집국장이었던 필자(筆者)에게 협조를 요청했었다.

이후 구태수 부원장은 곳곳을 수소문 한 결과로 악양면에 박만호 어르신(당시 92)으로부터 유성준 명창을 잘 알던 분을 소개받게 되었는데 그 분이 고() 조영주 어르신이었다.

당시 조영주 어르신께서 구태수 부원장에게 말씀 하시길 내가 남해에서 살다가 16살에 하동군 악양면 상신대로 이사를 와서 살았는데 바로 뒷집에 유성준 명창이 살고있어 당시에 제자였던 임방울 명창 등이 찾아 와 큰절을 올리고 용돈을 드리고 가는 그런 모습을 자주 봤다는 생생하고 분명한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당시 전라남도 완도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성준 명창의 딸(당시 83)구례하고 남원 등에서 악양에 있는 아버지 묘를 이전하게 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나를 비롯해 아버지 고향이 악양인데 묘를 옮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며 돌려 보냈다는 전언(傳言)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태수 부원장의 노력 결과로 당시 유성준 명창 묘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고() 변기호 어르신을 거동이 매우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묘소의 인근까지 모시고 가 영면 하신지 약60년만에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의 거장 유성준 명창을 세상 밖으로 모실수 있었다.

200812, 그러니까 15년전 어느날 필자가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지역신문에 당시 특집으로 보도가 된 기사를 찾아서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지난 3(2008123), 하동문화원 구태수 부원장과 놀이판 들뫼의 초대 회장을 지낸 이연호씨의 도움을 얻어 어렵사리 찾아간 유성준(劉成俊) 명창의 묘지(墓地)를 바라보는 순간 깊은 한숨부터 나왔다. 방향을 종잡을수 조차 없는 마을 길을 지나 돌무더기가 즐비한 넓은 녹차밭을 가로질러 가시덩쿨을 헤치고 없는 길을 만들며 들어 가다보니 오랜세월 명창의 유일한 벗이 되어준 큰 참나무 아래 돌무더기가 수북한 그곳에 이나라 최고로 손꼽히는 명창이 작은 묘비(墓碑) 하나 없이 마치 버려진듯 잠들어 있었다.”

이처럼 60년만에 찾게 된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의 거장 유성준 명창의 모습은 그러했다.

아무튼,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유성준 명창을 선양하기 위해 당시 하동군은 5천만원의 예산으로 명창의 묘소 정비와 이정표, 안내 표지판 등을 세웠으며, 201045일에는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유성준 명창 묘소 정비를 위한 사토제가 진행됐다.

또한, 명창에 대한 선양사업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이 되어 20096월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국비·지방비 등 4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유성준 명창의 선양사업은 7,565의 부지에 교육관·전시관·한옥체험관·누각·관리동 등 한옥구조의 건축물 5동과 주차시설을 갖추고는 7년만인 20161014일에 마무리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2391일 참으로 오랜만에 취재를 위해 필자가 찾아본 유성준·이선유 명창 기념관은 그야말로 버려진 듯 썰렁한 것이 당초 15년전 유성준 명창의 묘소를 처음 찾았던 그때의 그 마음에서 조금도 벗어 날수가 없었다.

모르면 알아야 할 것이고, 만약에 알게 되거든 아는 것을 실천 해야만 한다.

찟어지는 듯 쥐어짜는 전신(全身)의 단전(丹田)을 움켜 쥐고는 목구멍으로 피를 토하는 노력의 결과에서 판소리 명창이 태어나는 것처럼, 어느 분야의 전문가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성춘 대표기자. 블로그naver.com/hdnews9001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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