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껴도 너는 보인다

세상에 지우지 못할 흠은 없다지만

답 없는 문제도 가끔 있었지

박자를 놓쳐버린 노래를 듣거나

리듬을 잃어버린 춤을 보는 것처럼

삶은 대체로 무의미하거나 대책이 없다

거인들은 보이지 않고

쫄보와 잔챙이들이 득세하는 세상

고개를 크게 끄덕이지 않아도

눈가에 잔주름이 웃고 있다

미간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입술은 언제나 단아하다 너는

마음의 화면이 없어도

기승전결이 없는 이야기도

눈가의 웃음 하나로 충분하다.

시문학연구회 하로동선夏爐冬扇 시집 7 『산에 기대고 강에 물으며』 중에서

마스크에 익숙해진 세상이다.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마스크. 하여 상대의 눈을 바라보거나, 머리, 걷는 습성 등으로 상대를 파악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마스크를 껴도 너는 보인다”라고 확신한다. 마스크에 가려진 “단아한 입술”과 마스크의 가장 높은 곳을 만드는 당신의 콧날을 보진 못하지만 “눈가에 잔주름”이 “웃음”이 되는, 그래서 너를 알아보게 하는 것이다. “거인”이 없어진 세상 세상의 큰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나? “쫄보와 잔챙이들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들로 무슨 웃음들을 지을까? 무슨 저주나 욕설들을 되뇌고 있을까? 하여 어쩔 수 없음에 수긍하면서, “대체로 무의미하거나 대책이 없”는 세상들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 최영욱 -

▲ 이월춘 시인은 1957년 창원시 의창구 출생. 1986년 무크지 『지평』과 시집 『칠판지우개』로 등단 시집 『칠판지우개』 외 다수. 시선집 『물굽이에 차를 세우고』. 산문집 『모산만필2』 등이 있다. 홍조근정훈장, 산해원문학상 등수상. 현재 경남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