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

이제 막 바다에 닿는 강을 위해

먹빛 어둠 뒤에서

지구가 해를 밀어 올리고 있다

너의 앙다문 입술과 너의

발등에서 태어나는 시간과 사랑과 눈물이

가 닿는 세계도 그러할 것이다

오늘 하루치의 바람 잊지 않으려고

나뭇잎들이 음표를 던진다. 새가 하늘을 찢는다

새까맣게 젖은 눈빛 꺾이던 골목에도

쿠렁쿠렁, 힘찬 강이 열리고

푸른 햇발 일어서는 소리 들린다

흐르는 물은 반드시 바다에 가 닿는다.

배한봉 시집 『육탁』 -여우난골 -중에서

- 최영욱 시인 -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로 시작하여 “흐르는 물은 반드시 바다에 가 닿는다.”로 끝나는 이 작품은 당연한 진리로 시작하여 당연한 결과로 맺음하고 있다. 쉽게 읽히는 작품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침이 지니는 밝음과 생동감과 “새까맣게 젖은 눈빛 꺾이던 골목에도” 또 다른 아침이 열려, “강이 열리고 푸른 햇발 일어서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섬진강도 보름이나 그믐사리에는 남해의 물을 육지 깊숙이 밀어 올려 “쿠렁쿠렁”흘러내리는 섬진강물을 마중 나오는 것일 터이다. 저녁이 내리고 세상의 빛들이 사라지는 순간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모든 생명들이 회한으로 흐느끼거나 또는 안도할 때 어둠은 오히려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늘 ‘내일 아침’이 있어 희망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의 “앙다문 입술”을 찢으며 ‘아침’은 또 그렇게 올 것이니,,,,,.

*. 배한봉 시인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주남지의 새들』. 『복사꽃 아래 천년』. 『악기점』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