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내 눈이 내렸다. 온천지가 새하얗게 뒤덮인 아침, 창호문을 열고 내다본 세상 속에서 동구 앞 하얗게 온몸가득 흰 눈을 쓰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의 자태...
잠시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 그 머리위에서 자글자글 부서지는 빛 꽃의 눈부심! 그 눈꽃의 찬란함이라니...
소나무는 그 푸르름과 함께 영속되는 생명력으로 하여 십장생의 등장할 뿐 아니라 수많은 예술작품에 많이 선택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한겨울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고 있는 때에도 그 의연함으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의 모습에서 우리는 건강한 생명의 힘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소나무는 기름진 토양보다는 척박한 땅에 더 잘 자라는 수종이라 한다. 때문에 바위절벽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틈새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태를 자랑하는 것이다. 한방에서의 소나무의 쓰임은 물론 송절이라 불리는 가지와 줄기 그리고 흔히 송진이라는 소나무의 수지와 뿌리에서 생기는 복령이라는 약재까지 나무전체를 이용할 정도로 유용하게 쓰인다. 송절은 약성이 온(溫)하고 맛은 쓴데, 효능은 습(濕)한 것을 물리치고, 통증을 멎게 한다. 또 솔잎은 복통과 위무력에 효과가 있는데 분말로 만들어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면 위장을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솔잎즙은 당뇨와 삼장에도 효과가 있는데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이다. 신경통에 송진을 참기름에 타서 바르던가 솔잎 삶은 물에 찜질을 하면 효과가 좋다. 예로부터 도(道)를 닦던가 선(禪)의 경지에 이르른 사람들은 흔히 생식을 즐겨 하였는데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생콩과 더불어 바로 연한 솔잎이다. 어린솔잎을 씹어 즙을 마시게 되는데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 산에 소나무의 껍질이 남아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봄에 한참 물이 오를 때 껍질을 벗겨 그 속의 수액과 함께 연한 속껍질은 구황식으로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혹박테리아 종류라고 알려져 있는 복령은 귀신을 물리치는 영약으로 꼽히고 있다. 복령의 약성은 평(平)하고 맛은 달고도 담백하다. 신진대사기능 이상과 여러 가지 영양실조로 일어나는 하지의 부종을 치료할 뿐 아니라 혈당을 내리는 작용이 있어 당뇨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성장염에도 복령을 사용하면 설사가 멎게 되고, 민간에서는 복령을 꿀과 함께 피부에 바르면 주근깨를 없애기도 하였다. 소변불통에 복령을 5g정도 갈아서 따뜻한 물로 마시면 위장의 기능에 활력을 줄뿐 아니라 남성의 경우 정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정력 감퇴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국의 고서에 ‘복령을 백일동안 먹으면 만병이 없어지고 이백일을 먹으면 잠을 안자도 되며, 2년 동안 먹으면 귀신을 마음대로 부리며, 4년이면 옥녀(玉女)가 와서 시중을 들게 된다’고 하였는데, 황초기(黃初起)라는 사람은 5만일동안 먹고 나서 그림자가 없어 졌다고 한다. 그만큼 신비스런 영약이란 말일게다.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그로하여 아노라.
<고산 윤선도>

그저 무심히 바라보는 소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주는 갖가지 물질적 유용한 면이 아니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끊임없는 푸르름은 우리의 가슴속깊이 자리하고 정신세계를 키워온 것처럼 앞으로도 소나무의 의미는 우리네 정서와는 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갑자기 이 팍팍한 도심 한가운데서 푸르른 솔향을 느낀다.
눈이라도 왔으면 그 향기 더욱 짙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