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이정석 훈장

아이들이 즐겨 읽는 <이솝우화>에는 앞날에 닥칠 문제를 미리 대비하는 멧돼지 이야기가 나온다.
따뜻한 햇살이 만물을 비추는 어느 봄날이었다. 노곤해진 숲 속의 동물들이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유독 멧돼지만이 나무 아래서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여우가 이상히 여기며 물었다.
“멧돼지야, 뭘 그리 열심히 하고 있어?”
멧돼지가 대답했다.
“송곳니를 갈고 있어.”
대답을 한 멧돼지는 다시 이를 가는 일에 열중했다. 여유는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군.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 풀밭에 누워 낮잠이나 자지, 송곳니는 왜 간다고 그리 야단이야?”
여우가 혀를 차거나 말거나 멧돼지는 열심히 이만 갈았다. 그러자 여우가 또 물었다.
“송곳니는 왜 가는데? 지금 당장 어디서 사냥꾼이 나타나기라도 한 단 말이야?”
여우가 자꾸 물으며 방해를 하자 멧돼지는 대답해 주고 이를 열심히 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우야, 너는 제법 영리한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어리석은 소리만 골라서 하니? 생각해 봐. 지금 당장 사냥꾼이 나타난다면 내가 이를 갈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어. 위험이 닥치기 전에 미리 송곳니를 날카롭게 갈아놔야지.”
멧돼지의 말을 듣고 여우는 부끄러운 줄은 알아 재빨리 꼬리를 감추고 사라졌다.
다른 동물들처럼 따뜻한 햇살 아래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도 싶겠지만, 멧돼지는 위험이 닥치기 전에 미리 송곳니를 간다. 어쩌면 어미 멧돼지로부터 그러한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 배우지 않고서야 어찌 그토록 기특할 수 있겠는가.
넋 놓고 있다가 사냥꾼이 나타나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우리의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예방하지 않는 것 그 자체로 교육상 이미 늦어 버리는 것들이 허다하다.
흡연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온갖 질병의 근원인 담배는 유아기 때부터 미리 그 해독을 가르쳐야 한다. 담배와 상관도 없는 나이에 무슨 금연 교육이냐 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암에 걸린 폐와 같이 담배로 인해 망가진 사람의 몸을 찍은 사진이 있다. 그런 자료들을 보여주며 가르치면 자녀는 담배의 해로움을 머릿속에 깊이 입력해 둔다. 그런 가르침이 꾸준히 이어지면 담배를 피울 나이가 되어서도 자녀는 스스로 견제할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알고 있는 덕분이다.
반면에 그 해로움을 간접적으로도 느껴 보지 못한 자녀는 기회가 되면 호기심에 일단 담배를 입에 물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중독이 되어 스스로도 어쩔 수 없게 된다.
담배를 피울 나이가 되었을 때 다급해진 부모가 뭐라 한다고, 자녀가 순순히 따르지는 않는다. 나쁜 유혹에 휩쓸리는 것일지라도. 내 인생 내가 선택하겠다고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송곳니를 갈지 못하고 사냥꾼을 만나는 멧돼지 신세가 된다.
담배를 끊을려고 많은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게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옳게 가르쳤다면 담배로 인한 해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