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이정석 훈장

인생은 곧잘 한 편의 연극에 비유되곤 한다. 막이 오르고, 그 나름의 사연과 곡절이 이어지다가 막이 내리는 무대, 그것은 아닌 게 아니라 저알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았다.
그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온갖 이야기 가운데 부모의 입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자녀를 올바로 키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주 이런 독백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내 아들이, 내 딸이 우리 부부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났구나. 과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그 진지한 독백으로 막을 올린 가정의 무대에서 부모와 자녀는 함께 공연을 한다. 가르치는 배역을 맡은 부모와 배우는 배역을 맡은 자녀가 주인공이 되는 교육의 연극이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 맡은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다면 그래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낸다면, 이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공연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감동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 공연의 주제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를 찾을 수는 없다. 어설픈 연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연극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부모가 흔히 하는 대사가 있다. “우리 아이는 도대체 왜 저 모양일까?”
배우는 배역을 맡은 자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무대가 엉망이 되었다는 탄식이다. 길게 한숨까지 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자녀를 잘못 키워 놓고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생 헛살았다고 가슴을 킬 노릇이니, 당연하게도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탄식하고 자녀를 탓하는 말들이 삶의 무대 위에 무성하다. 그런데 그런 대사들은 삼류 작가가 쓴 엉터리 대본을 그대로 읽는 꼴 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냉철한 비평가가 말한다. 왜 배우는 배역을 맡은 자녀만을 탓하는가? 그에 앞서서 부모는 먼저 가르치는 배역을 맡은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 연극이 엉망이 된 것은 부모 배역의 연기가 어설픈 탓이다. 올바로 가르쳐야 올바로 배우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부모가 올바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자녀가 올바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제야 깨닫고 부모가 반성의 독백을 한다. “아!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구나.”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부모들이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데, 자녀 입장에서 보면 어설픈 부모 밑에서 자녀 노릇하기도 힘든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자기 탓을 하기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걸 세상사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자녀 교육 문제에서 부모들도 그런 함정에 쉽게 빠지곤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부모들은 항변할 것이다. 부모로서 가르치는 배역을 충실히 해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자기 배역을 소홀히 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런 항변을 하는 아픈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먼저 자기 배역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