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 찬인

악양의 초등학교 통합 동창회가 열린다고 한다.
악양, 매계, 축지 등 세 개의 학교가 있었으나 매계, 축지는 폐교되고 악양 초등학교만 남아 있는데 세군데 동창회가 통합하여 단일 동창회를 여는 모양이다
학교가 없어지더라도 통상의 경우 동창회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악양 사람들은 세 군데를 통합하여 그 뿌리를 보존하려한다.
이런 악양 사람들의 뿌리 찾기와 끈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옛사람들이 악양을 일러 청학동이나 십승지(十勝地)라 하였다 한다.
조선조 중엽 이중환은 택리지를 저술하면서 악양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 지리산은 태을선인(太乙仙人)이 사는 곳이며, 뭇 신선이 모이는 곳이다.....
산 남쪽에 화개동과 악양동이 있다. 모두 사람이 살고 산수가 아름답다.....
지리산에 만수동(萬壽洞) 과 청학동(靑鶴洞)이 있다고 예전부터 전해오는데 만수동은 지금의 구품대이고 청학동은 지금의 매계(梅溪)이다......>
* 만수동은 지금의 악양 정동이고, 매계는 악양의 매계
또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십육지에서 사람이 살만한 곳 24개소를 지목하였는데 그 중에 진주의 화개동과 악양동이 들어있다.

악양(岳陽)은 참 묘한 곳이다.
악(岳)은 아가, 작은이란 뜻에서 한자화된 것이고, 양(陽)은 햇볕을 말하니 덥지 않고 따뜻한 곳이란 말이 된다.
마고 할매의 창세신화가 서려있고, 형제봉의 금환낙지(金環落地) 전설, 기독교의 대홍수 같은 시루봉 전설, 입석(立石)마을, 낙노국 솔봉산성 등등.
창세에서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신화와 전설이 곳곳에 서려있다

지리산 마고 할매의 창세신화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하고 조선조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어 영해박씨 집안에 필사본으로 남겨진 부도지(符都誌)에 기록되어 있다.
<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마고는 선천을 남자로 하고 후천을 여자로 하여 궁희 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 소희 역시 결혼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그 남녀가 결혼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사이 족속이 불어나 3,000사람이 되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먹지 못하게 한 포도나무를 먹고 사람들이 혼탁하고 악해져서
마고는 궁희, 소희와 더불어 물을 부어 성내를 청소 하니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규태가 지은 ‘개화백경3’에는 지리산 형제봉 설화가 실려 있다.
<옛날에 지리산 형제봉에 형제신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신은 양기가 넘치고, 다른 한 신은 거세되어 생산을 못하였다.
여기에 옥녀신(玉女神) 자매가 형제신과 사랑을 하도록 계시를 받았으나 이 형제신중 누가 양기가 넘치는 남신인지 알 수 없었다.
옥녀들과 형제신이 어울렸는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한 옥녀의 손가락에 끼어있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졌다.
이곳이 악양 땅으로 양기가 넘쳐 자손이 번창 하는 곳이다....>

마고 할매 신화의 두 천인과 두 천녀, 형제봉 전설의 두 남신과 두 여신이 묘하게도 일치하지 않는가?
‘악양면지’에 나와 있는 시루봉 전설은 더욱 점입가경이다.
<먼 옛날 악양에 9년 홍수가 내려 천지가 개벽될 때 악양의 두 형제가 홍수를 피해 산에 올라 형은 윗봉, 동생은 아랫봉에 서 있는데 형은 발목까지 물이 차고 동생은 무릎까지 물이 찼다
동생이 위에 있는 형을 보니 봉우리가 보이는데 마치 떡 시루만 하여 그때부터 시루봉이라 불렀다 한다...>

위 세 가지 설화를 살피니 묘하게도 그 분위기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반도 어느 곳에 악양 같은 창세신화가 있는 곳이 있을까?
신화와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때의 상황이나 사실이 수천년의 전승을 거치면서 압축되고 상징화되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의 암호이다.
누가 이 역사의 암호를 풀어내느냐에 따라 역사가 되기도 하고 월광에 바래 신화로 남기도 한다.
세상을 만들고 인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악양 땅, 어쩌면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또 다른 시원은 아닐까?

우리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신라의 출자형(出字形) 금관과 흡사한 시베리아 순록의 뿔을 연계한 바이칼 호수 근원설,
파미르고원의 천산에서 태양을 따라 이동하여왔다는 대륙이동설,
한반도 남부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자생설 등등이 있으나 통설적 입장에서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한반도로 이주해 온 외부 유입민과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던 원주민과의 결합에서 한민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 남부에서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원주민의 시원이 악양을 중심으로 하는 하동 땅이 아닐까?
그러기에 악양 땅에 창세설화가 곳곳에 있는 것이 아닌지?
신석기이전의 유적인 입석(立石)이 있고, 부족국가인 낙노국이 현존하는 사서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볼 때 터무니 없는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악양 사람들의 뿌리 찾기와 끈끈함도 오랜 세월 속에 배태된 역사의 DNA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