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이정석 훈

“술통 어제 또 사고쳤대.”
“그 버릇 개 주겠나.”
“하여간 못 말리는 인간이라니까.”
“냅둬.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해.”

이 대화가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주고받은 말이란다.
술 마시는 친구를 두고 한 말이라도 점잖지 못하다. 그런데 그 술통은 다름 아닌 그 학생들의 담임교사의 별명이란다. 아무리 세상은 변하는 것이라고 해도 어떻게 제자가 스승을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학생들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담임이 마침 그 날 학생들 흡연 문제 때문에 소지품 검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 교사에게 담배를 갖고 있던 학생들이 질책을 받는다고 거기에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겠는가. 속으로 “당신이나 잘해.” 라고 말할 게 뻔 한 노릇 아닌가. 극소수의 문제겠지만 참 기가 막힌다.
자녀를 가르치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부모가 자녀에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면, 자녀는 납득하지 못하고 따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스승과 제자 관계와 부모와 자녀 관계는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스승과 제자는 군신 관계나 친구 관계와 마찬가지로 의와 예를 중시한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따르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의와 예가 깨지면 그 관계도 깨지게 된다.
신의를 저버리는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고, 군주답지 못한 왕은 신하로서 섬기지 않게 되고, 본받고 배울게 없는 배울 게 없는 사람을 제자는 스승으로 모시지 않게 된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 관계는 다르다. 최고의 가치라 할 수 있는 희생정신이 바탕에 깔린 절대 관계라 할 수 있다.
친구가 신의를 버렸으니 이제 친구가 아니라는 상대 관계와는 다르다.
자식이 못났다고 부모가 이제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부모는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못난 자식에게도 사랑을 쏟는다. 아니, 못난 자식이기에 오히려 더 깊은 정을 쏟기도 한다.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못났다고 이제 내 부모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식도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못나 보이는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만드는 사랑과 효는 합리적인 사고로 재단할 수 없다. 온갖 혜택을 주는 자연 속에 안기어 사람이 살 듯, 자식은 부모에게 안기어 살고, 또한 자식은 효로써 그 은혜에 답한다.
자연에 안기어 살던 사람이 자연의 재앙 때문에 죽음ㅇ르 당하게 되어도 자연을 원망할 수는 없다. 그 재앙은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몹시 강한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졌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진 집에 깔려 죽음을 맞았다. 그때 집을 튼튼하게 짓지 못한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할 수는 있지만 바람을 저주할 수는 없다. 죽지 않고 남은 사람은 늘 그랬듯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녀는 상대적인 가치를 넘어서서 사랑과 효로 살아야 한다.
이렇듯 부모와 자녀 관계는 스승과 제자를 비롯한 다른 관계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것의 의미와 효과를 따져볼 때는 스승과 제자 관계와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부모가 말로만 가르치고 실천하지 않을 때, 자녀에게 그 부모는 여전히 부모이기는 하지만 교육자는 되지 못한다. 교육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 부모는 자녀를 가르치기 어렵다.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라 해도 그런 못난 부모에게 효를 다할 수는 있지만, 배울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을 하고 있는 부모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초상이 어떻게 그려질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초상이 비틀린 모습으로 그려지면 자녀 역시 비틀린 모습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고, 그 초상속의 눈이 밝고 맑으면 자녀의 눈도 빛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