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비 문 찬인

“ 이 화창한 봄날의 벚꽃. 바람이라도 불어보라지.
바람에 날리는 흰분홍 이파리에 어찌 환장하지 않겠는가?
어찌 저 꽃을 보고 견딘단 말인가?
하얀 분홍의 봄비는 온몸으로 춤추는 봄바람의 빰을 때린다. 하늘에서 눈보라처럼 흩날리며 고요히 내려앉는 꽃비들. 처연하게 마지막을 앞다투어 지는 꽃잎들.
하얀 물감을 뿌린 벚꽃은 사방으로 색을 흩뿌리며 사라진다.”
전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발로 누비다가 화개 십리벚꽃을 만난 경향신문 장원수 기자의 글이다.

“화개골 냇물이 소주 약주 겉으면
팔도에 한량이 내 친구로다
벚꽃나무 밑에다 임 실어 놓고
임인가 꽃인가 분간을 못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

지리산 상봉에 원앙새 울고
봉투지 안에는 임 소식 온다
화개야 십리벚꽃 경치가 좋아
팔도에 기생이 다 모아 든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
화개면 삼신리 침점마을 안성엽 여사가 화개 여러 마을의 할머니들로부터 채록한 ‘화개 아리랑’중의 일부이다.

화개 사는 것이 가장 자랑스러울 때가 벚꽃이 흐드러지는 지금 일 것이다.
방방곡곡의 사람들로 화개 골짝이 딱 막혀버려 볼일 보러 나가기조차 어렵지만, ‘나는 이 동네 산다오.’ 하며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피는 꽃도 장관이지만 지는 꽃은 더욱 장관이다.
달빛에 보일 듯 말 듯 피어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아침 이슬 머금고 햇빛에 깨어나는 벚꽃은 신비롭기 까지 하다.
한 낮에 우루루 몰려와서 대충 둘러보지 마시고 저녁 달빛에 벚꽃 밑을 걸어 보시라.
내 언제 세상 떠난 도인이었던가?
행여 시간이 된다면 해 뜨는 아침, 이슬 머금은 벚꽃에 살며시 코 갖다 대어 아침잠에서 깨어나게 하시라.

1928년 12월 어느 날 당시 하동군수 이소영(李韶榮)은 화개면장 김진호(金鎭灝: 1882~1935)와 고승의 산방에서 동숙하면서 면의 도로를 개설하고 벚나무 가로수를 심을 것을 의논 한다.
“면내에 가장 급한 것이 도로를 개설하여 물산의 수송을 용이하게 하고, 많은 빈객에게 편의를 준다면 어찌 면민에게 행복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면에 적립된 재정이 없고 백성에게도 약간의 여력마저 없으니 어떻게 진행하겠습니까?”
“만리장성도 마땅히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니 원컨대 면장께서 극력으로 생각하여 기울이 소서”
김진호 면장은 군수의 독려와 지원약속에 마음을 크게 일으키고 힘을 발하여 모든 면민이 떨쳐 일어나게 하였다
면민이 힘을 합하여 산을 자르고 골을 메우는 2년여 노력 끝에 훤히 빛나는 길을 만들었다
지금의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5km의 신작로이다

신작로가 완성되어가는 1931년 초, 화개뿐만 아니라 하동의 유지까지도 성금을 각출하여 복사꽃 200그루와 벚나무 1200주를 신작로 양편에 심었다
당시 벚나무는 1주당 10전으로 일본에서 들여왔다
10전은 당시 정식 1끼 값이니 요즘으로 치면 6~7천 원 정도 일 것 같다.
아마 그때의 벚나무 중 몇몇은 살아 있을 것 같은데 수령 90년 넘은 나무를 조사하여 표시하고 기념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 때 벚나무와 같이 심은 복사꽃 200그루는 다 어디로 갔을까?
70년대에 수해방지를 위해 화개천의 홍도화를 모두 잘랐다는데 그 때 모두 없어졌을까?
어쨌거나 이소영 군수는 공사를 마무리하고 1931년 4월 ‘화개동천기’를 남기며 이렇게 자찬한다.
“촉산(蜀山)같은 험한 곳에 도로를 개설하여 복사꽃과 벚꽃으로 가로수를 심으니 세상에서 명물이라 하네.”

벚꽃은 흔히 일본의 나라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법으로 정해진 일본의 국화는 없다.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菊花)이고, 일본 정부를 상징하는 문양은 오동나무이다.
하지만 자위대나 경찰의 계급장이나 휘장에 벚꽃이 사용되는 등 사실상 나라꽃으로 대접받고 있다.
일본인에게 벚꽃은 ‘일본인의 마음’ 이라 한다.
한때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 하여 배척하던 때가 있었다.
창경궁의 그 아름답던 벚꽃들이 다 잘려 나갔다.
꽃은 꽃일 뿐이다.
꽃 이상도 꽃 이하도 아니다.
좋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착한 심성을 이념이나 애국으로 왜곡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