露浥高林晩(노읍고림만) 저물녘 높은 나무는 이슬이 젖었고,

衣巾碧液流(의건벽액류) 옷과 망건엔 푸른 옥액이 흐르네.

拈花蓮社裏(염화련사리) 백련결사에서 꽃을 들어 보이고,

採茗竹輿頭(채명죽여두) 대 가마 앞에 타고 차를 딴다네.

南紀氤氳到(남기인온도) 온화한 기운 도는 남쪽지방에 다다르니,

中峯杳靄留(중봉묘애류) 아득한 저녁노을 봉우리 중턱에 머무네.

緬懷韓錄事(면회한록사) 먼 옛날의 한녹사를 종적을 회고하며,

何谷紫芝抽(하곡자지추) 어찌 골짜기에서 자줏빛 지초를 캐느냐.

佛日菴(불일암) : 쌍계사의 암자로 불일폭포 서쪽에 있다. 불일암은 보조국사의 시호를 딴 이름이다. 혹은 불교에서 부처님을 가리키는 '불일(佛日)'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신라의 원효. 의상이 도를 닦고 고려 보조국사가 머문 암자이다. 1980년대 초 화재로 소실된 후 최근에 다시 지어졌다.

拈花(염화) : 꽃을 따다. 拈花示衆(염화시중) : “꽃을 들고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 말을 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하고자 하는 행위. 염화미소(拈花微笑)..

蓮社(연사) : 백련사(白蓮社)의 약칭. 강진 만덕산 백련사(白蓮寺)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1163~1245)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신앙결사단체. 백련결사(白蓮結社)라고도 한다.

竹輿(죽여) : 대로 엮어 만든 뚜껑 없는 가마. 남녀(籃與).

氤氳(인온) : 하늘 기운(氣運)과 땅 기운(氣運)이 서로 합하여 어림.

杳靄(묘애) : 노을.

緬懷(면회) : 회고(하다).

한록사[韓錄事.?~?] 한유한(韓惟漢)이다. 녹사(錄事) 한유한(韓惟漢)은 지리산(智異山)에 은거하면서 조행(操行)이 고상하고 조촐하여 세상일을 간섭하지 않았는데,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한유한이 처음 서울에 살았으나, 최충헌(崔忠獻)의 정사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는, 장차 난(亂)이 일어날 것이라 여기고, 처자(妻子)를 데리고 지리산 악양동(岳陽洞)에 들어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은거하였는데, 뒤에 나라에서 서대비원 녹사(西大悲院錄事)를 제수하여 불렀으나 끝까지 취임하지 않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종신토록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卷三十》

紫芝(자지) : 자지(紫地), 자주(紫朱)라고도 한다. 선약(仙藥)인 영지(靈芝)를 가리키는데, 진(秦) 나라 말기에 네 늙은이[四皓]가 난(亂)을 피해 상산(商山)에 은거하면서 자지를 캐먹고 살았다는 고사로, “빛나는 붉은 지초는 가히 요기할 만하도[燁燁紫芝 可以療飢]”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 1708년(숙종 34년) 2월부터 영남지방, 3월 13일부터 17일까지는 악양(岳陽), 화개(花開)지역을 유람(遊覽)하고 영남일기(嶺南日記)를 남겼다. 위의 詩는 3월 15일 불일암(佛日菴)을 가면서 쓴 茶詩다.

※ 하동과 관련된 차시(茶詩)로는 “견산다억제(見山茶憶弟)”가 있으며, 시(詩)로는 “쌍계동구(雙溪洞口)”,“쌍계사(雙溪寺)”,“칠불사(七佛寺)”등 26수(首)가 전한다.

김창흡[三淵 金昌翕.1653(효종4)~1722(경종2)].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를 지낸 김창협(金昌協)이 그의 형이다. 이단상(靜觀齋 李端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부친의 명으로 응시하여, 1673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로는 과장(科場)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우리나라 명산과 절경을 유람하고 많은 시문을 남겼다. 문집으로 『삼연집(三淵集)』이 있다.

역자(譯者) 정경문(茗谷 鄭慶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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