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수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삽화 같은 자투리 같은 이야기들이 있지 마련이 다. 우리 수필가들이 이런 소재로 이른바 ‘신변수필’을 생산해 내고 있다 더욱이 오랜 세월 속에 잠자고 있는 선대인들의 생활이라면 더욱 호기심을 끌 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가계수필’로서 선대 할아버지들의 일화를 찾아내 이 글을 써보는데, 문단 이면사가 재미가 있듯 흥미를 좀 끌 수도 있지 않을까도 싶다. 나의16대조에는 중종조에 벼슬을 한 이적(李迪)이라는 분이 있다. 마지막 벼슬은 홍문관 교리다. 교리 되기 바로 전에 글이 뛰어나 중국에 서장관으로 간 적이 있다.

황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황제가 이 할아버지의 문장과 재덕에 감동을 받아 작은 나라 조선에 이런 영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 그런 점을 가상히 여겨 직접 서너 가지 하사품을 내렸는데 이때에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책을 일부러 청해 하사받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오자 이런 사실이 알려져 곧 교리 겸 경연 시독관 참찬관을 제수 받는다. 그리고 이런 일 외라면 이 할아버지가 조성에서 물러나 있을 때의 이야기다.

회재 이언적의 본 이름도 사실 처음은 이 할아버지 이름과 똑같은 적(迪)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중종이 회재를 보고 지난날 조정에 그대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서 혼동을 피하고 예의로 보아 자를 넣어라 하여 결국 회재의 이름이 이언적인 된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한참 지나 회재의 이름이 들어나고 또 나의 할아버지도 고향에 내려가 후학들을 가르치며 더욱 이름이 높아지자 사람들은 강우江佑 즉 경상우도에 나의 할아버지가 있다면, 경상좌도인 강좌江佐에는 회재가 있다고 칭송 하기도 했다.

이 일하를 음미하면서 사람이란 그 어디에 있건 능력만 있으면 그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좋은 일이기회도 오는구나 싶은 생각도 해보고 있다. 15대조 도남圖南할아버지 경우라면 활쏘기와 관련 있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경직京職으로 종묘의제사와 시호諡號 업무를 관장하는 봉상사 부정(종3품)으로 있을 때 이야기이다.

그때 벌써 나의가 66세였는데 어느 날 상감이 명종이 왕림하여 신하들 활 쏘는 솜씨를 구경하고 있었다. 무신 아닌 문신이 할아버지가 환갑을 훨씬 지난 늙은 나이에 뜻밖에도 활 세 발을 연달아 명중시켜 1등을 하는 것을 보고, 상감이 이를 가상히 여겨 특별히 동래부사로 제수했던 일이 있다, 나는 이 예하를 보며 물론 다 이는 사실이긴 하지만 특히 나의할아버지 일라서 사람이란 꼭 한 가지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실감나게 확인해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때론 어떤 우연한 일 또는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 어떤 일도 잘되어 갈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일이란 꼭 마음을 먹고 한다고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의 필연’이란 말이 있듯 우연으로 되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 보고 있다. 어찌 보면 그것도 다 운명이요 또 운명적 만남의 인연과 기회이라. 그리고 비록 직계는 아니지만 이15대조 할아버지형제 중에 바로 손아래 동생에 형(亨南)이란 분이 있었다..

호는 비암比巖이다. 중종 29년 22세 때에 유교경전 시험인 명경과明經科 말단에 합격했는데, 마침 당시 81세로 낙방한 한 노인이 있기에 임금이 이를 애석 히 여겨 젊고 다음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하여 그 노인을 할아버지 대신으로 합격시킨 일이 있다. 구후 선조 27년(1594)에 임금이 이 사실을 알고 특별히 할아버지를 불렀으나 고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대신 외아들을 한성부 우윤에 제수한 일이 읶었다. 이 할아버지는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우리 종중 ‘비암공파’ 후손으로 맥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