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이병주의 마술사는 1968년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화자인‘나’는 지리산 산록의 S라는 소읍에서 낙백의 처지에 빠진 마술사 송인규를 만나고 그의 곤궁을 돕는다.
소설은 송인규와 그의 스승 크란파니, 그리고 운명의 여인 인레의 이야기이고 일제강점기의 버어마에서 비롯된다. 마술이 어떻게 환각을 현실화 할 수 있으며 그 기묘한 변화과정이 어떻게 독자들의 납득을 유발하도록 서술될 수 있는가를 증명한다.
마술의 실연(實演)에 거는 제동장치로써 신뢰와 사랑에 대한 배신을 매설한 것은 기막힌 서사 구조이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사실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신비로운 이 담화 속에는, 학병에 동원되었던 작가의 체험과 활달한 로망의 상상력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소설을 통해 작가는 근대사의 격랑을 거쳐 온 자신을 위무하고 동시에 그 힘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도 전한다.

■『쥘부채』
쥘부채는 이병주가 지닌 작가적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의 폭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작품이다. 비상조치법 위반으로 형무소에 수감되어 결국 유명을 달리한 두 남녀의 사랑, 이것의 배경이 된 부조리한 시대의 아픔,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 방황 등이 쥘부채라는 작은 소품을 퉁해 한데 어우러진다.
이야기는 ‘하아얀 눈 위에 검은 나비가 앉아 있었다.’ 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비가 아니었다. 길이 7cm, 두께 2cm 남짓의 자그만 부채였다.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해 음습한 요기(妖氣)마저 감도는 쥘부채, 서대문 형무소와 가까운 독립문 근처 길가에서 우연히 그것을 주운 대학생 동식은 어떤 운명에 이끌린 듯 쥘부채의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청실과 홍실, 검은 실 대신 머리칼로 꼰 검은색 술이 달린 부채를 펴면 나리꽃에 머리를 반쯤 묻고 있는 나비가 그려져 있고, 꽃에는 ㅅ, ㅁ, ㅅ이, 나비 날개에는 ㄱ, ㄷ, ㄱ이 깨알만하게 새겨져 있다.
이동식은 한 형무관을 쫓아 기어이 이 이니셜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 쥘부채의 주인은 신명숙.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스물 두 살의 처녀 신명숙은 비상조치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196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고 20년으로 감형됐으나 출감 3년을 앞둔 서른아홉에 병사(病死)해 시신이 되어 감옥을 나오게 되는데 그녀가 감옥에서 만든 쥘부채는 길가에 떨어진다. 꽃에 새겨진 ㅅ, ㅁ, ㅅ은 신명숙의 이니셜이었다.
ㄱ, ㄷ, ㄱ은 신명숙의 애인 강덕기. 그는 신명숙을 꾀어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가 붙들려서 저는 죽고 신명숙은 무기징역을 받게 한 사내다.
신명숙의 시신을 가지고 나온 이모네가 총각으로 죽은 귀신과 영혼 결혼을 시키려 하는데 어떤‘거의 마흔이 가까이 돼 뵈는 사람’이 나타나 성례를 하려면 자기 형님하고 해야 한다고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이가 바로 강덕기의 동생 강덕호, 신명숙의 가족이 강덕기 가족이 바라는 영혼결혼을 승낙할 리 없다. 그때 쥘부채의 주인인 신명숙의 주소지를 수소문해 찾아간 동식은 부채를 펴 보이고 거기에 새겨진 이니셜의 비밀을 푼다.
‘나는 죽어 꽃이 될 테니 당신은 죽어 나비가 되어 오라’는 신명숙의 간절한 사랑과 염원(念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료제공 : 이병주 문학관 055)882-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