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譯者) 정경문(茗谷 鄭慶文)

歸兜率山(귀도솔산)
정관일선(靜觀一禪)
庚辰元月曙光微(경진원월서광미) 경진년 정월에 새벽빛이 희미한데,
步自白雲向兜率(보자백운향두률) 흰구름 속을 걸어서 도솔산을 향하네.
渡水經丘幾萬重(도수경구기만중) 물 건너 언덕을 지나기를 몇 만 번인가,
行行忽至山腰歇(행행홀지산요헐) 걷고 걸어 산허리에 금세 이르러 쉬네.
踰巓暮到藥師菴(유전모도약사암) 산을 넘어 저물녘 약사암에 이르니,
老衲出門迎入室(노납출문영입실) 노승은 밖을 나와 방으로 맞이하네.
漢茗自煎餽我勤(한명자전궤아근) 한명을 손수 달여 나에게 자주 권하니,
趙州餘風今無關(조주여풍금무관) 조주선사 남긴 유풍 이제는 관계없네.
山高境靜塵事空(산고경정진사공) 산은 높고 경내는 고요해 세상일 없어,
南望長天坐超忽(남망장천좌초홀) 남쪽 먼 하늘 바라보며 초연히 앉았노라.
遠寺隔林動暮鍾(원사격림동모종) 숲 너머 먼 절의 저녁 종소리 울리고,
松窓半掛西山月(송창반괘서산월) 솔 창가엔 서산의 달이 반쯤 걸렸네.
夜深就臥不成眠(야심취와불성면) 밤은 깊어 누웠어도 잠들지 못하고,
幽谷風回松籟聒(유곡풍회송뢰괄) 깊은 산골 솔바람 소리가 요란하네.
曉雪滿山開戶看(효설만산개호간) 문 열고 바라보니 온산에 새벽 눈 내려,
千岩萬壑白銀窟(천암만학백은굴) 온갖 바위와 골짜기는 은빛 굴 같네.
更有一菴在上方(경유일암재상방) 위쪽에는 또한 한 암자가 있으니,
飛甍蕭灑掛岩角(비맹소쇄괘암각) 날렵한 용마루는 바위 끝에 매달렸네.
聲殘曉漏煮晨茶(성잔효루자신다) 파루소리 잦아드니 새벽에 차 끓이고,
洞府煙橫靑一株(동부연횡청일주) 선경엔 한 줄기 푸른 연기 가로지르네.
從此誓將不出山(종차서장불출산) 지금부터 맹세코 산 밖을 나서지 않고,
澗邊春暖採薇蕨(간변춘난채미궐) 따뜻한 봄날 시냇가에서 고사리나 캐려네.

庚辰年(경진년) : 1580년(선조13).
漢茗(한명) : 중국의 차.
趙州餘風(조주여풍) : 당(唐)나라 조주선사(趙州禪師)가 남긴 끽다거(喫茶去)의 유풍(遺風)이다. 조주선사는 불법을 물어오는 제자들에게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끽다거(喫茶去)]”라고 하여 일상생활 속에 선(禪)의 묘리(妙理)가 들어 있음을 보여 주었는데, 이 일화에서 ‘차 마시고 가라’라는 선종의 화두(話頭)가 생겨났다. 《五燈會元 卷4 趙州從諗》
罷漏(파루) : 조선시대 종루에 물시계와 함께 대종(大鐘)을 걸어놓고 밤 10시경에 종을 28번 쳐서 인정(人定)을 알리면 도성의 문이 닫히고 통행금지가 시작되며, 새벽 4시경인 오경삼점(五更三點)에 종을 33번 쳐서 파루를 알리면 도성의 8문이 열리고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飛甍(비맹) : ‘용마루’를 지칭하는 말. 그 형세가 꼭 나는 모습이라 하여 이렇게 불리움.
洞府(동부) : 신선(神仙)이 사는 곳.

❊ 차시(茶詩)로는“고사(古寺)”가 있으며, 하동과 관련된 시(詩)에는“칠불사(七佛寺)”,“증두류승(贈頭流僧)”등 6수(首)가 있다.

정관 일선[靜觀 一禪.1533(중종28)~1608(선조41)]. 조선 중기의 승려.
호(號)는 정관(靜觀). 성(姓)은 곽(郭). 논산시 연산면 출신. 문집(文集)에《정관집(靜觀集)》이 있다. 1547년(명종2) 15세에 출가한 후로 백하 선운(白霞 禪雲)에게서 법화사상을 배우고, 나중에 청허 휴정(西山대사) 스님에게서 법을 전수 받았으며 사명 유정(泗溟 唯政), 편양 언기(鞭羊 彦機), 소요 태능(逍遙 太能)과 함께 휴정의 4대 제자 중 한분 이다. 선사는 평생을 청정 구도의 수행 생활로 일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역자(譯者) 정경문(茗谷 鄭慶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