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신문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독자분들게 나름의 어떤 소신(所信)을 갖고 약속을 했던 것이 벌써 약 15년전이다.
‘소수의 특정 인물들에게는 분명 욕을 먹겠지만 다수의 군민들을 위한 그런 글을 쓸 것이다’ 고 그렇게...
하지만 사실 그것이 격고 보니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이 나라가 소수의 목소리나 행동이 더 크고, 오히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뭔가 크게 잘못 되어진 세상으로 가진자들과 쥔자들에게 적당히 타협하며 그렇게 살았더라면 아니 단지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써 평범하게 어우러졌더라면 훨씬 삶은 편안 하였을 것이고, 생활은 자유로웠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비록 힘이 들었을 지언정 아직도 크게 부족하긴 하지만 그동안 기자로 지역사회에 몸 담아 지역 신문의 발전과 그 기반을 다지고 또 민의를 대변하는 일에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는 약간의 자부는 갖는다.
이제는 한 신문사의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았지만 ‘자리나 탐하려거든 이 자리는 개에게나 줘버릴 것이다’고 분명하게 또 하나의 다짐을 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얼굴이나 내밀고, 겉치레에다 개폼이나 잡는 그런 모양새의 오너들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만큼 싫기에 나는 그저 영원한 기자로 남아 그 역할에나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경영자의 입장으로 직원들을 챙겨야만 하고 신문사를 운영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고충이 곁들여 지다 보니 사뭇 여러가지 갈등의 요인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참으로 많은 분들께서 필자에게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정말 고마운 분들로 참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런데, 한결같은 그분들의 말씀이 ‘건강도 좋지 않으면서 이제는 그 고집도 적당하게 조절을 해 내 마음부터가 편하게 일을 했으면 한다’는 걱정을 동반한 조언(助言)이었다.
마치 사전에 맞추기라도 한 듯 5일 사이에 여덟분이 직접 찾아와 한번쯤 내 자신을 돌이켜 볼 그런 기회를 주셨다.
현직 군청 공무원, 퇴직한 공무원, 자영업자, 마을이장, 농협 관계자, 어느 학교장, 여성단체와 보훈단체 관계자 등 여러분들이다.
필자가 풀어야 할 숙제 하나를 주신 것 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분들께서 내어주신 숙제를 풀기위해 1주일간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였다.
참 고마우신 분들께서 풀라고 주신 문제라 반드시 해야만 하겠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20일 밤 12시 10분경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1시 38분에 눈을 떴다.
이날도 1시간 20여분을 쓰러져 있다가 결국 잠을 설치게 된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이 되는 생활로, 다시 잠들기는 틀린 것 같아서 수많은 책들 가운데 오랜기간 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한권을 뽑아 책상 머리에 앉았다.
‘비우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라. 텅비어 있을 때 비로소 충만하다. 텅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찾을 때 보다 더 충만하다’ 겉 표지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법정 스님의 산문집 ‘텅빈 충만’이다.
‘나무 아래서 무심을 익히다’라는 제하의 글을 읽었다.
그런데 그 말미에 1989년 6월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에서 법정(法頂) 합장이라고 쓰여진 글귀가 눈에 들었다.
수류화개(水流花開)?라는 말을 되 뇌이면서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는 검색해 보았다.
검색 된 내용이 너무 간단해 스님께서 하동의 화개와 관련된 근거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뒤지다가 지식백과에서 법정 스님의 흔적으로 지리산 쌍계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였다’라는 대목을 찾을 수 있었다.
아! 쌍계사에 계셨고 이때 이 책을 쓰셨구나 필자는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고는 한참을 읽어 나갔다.
그런데 법정스님께서 수류화개(水流花開) 즉 화개(花開)와 관련이 있으신건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그 뜻은 스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따로 있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이 어디 이겠는가? 물론 산에는 꽃이피고 물이 흐른다. 그러나 꽃이피고 물이 흐르는 곳이 굳이 산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설사 도시의 시멘트 상자속 같은 아파트 일지라도 살줄 아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삶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그 둘레에는 늘 살아있는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이다’라고 하셨다.
바로 이것이었다.
곧 “사람은 어디서 무슨일에 종사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건간에 자기 삶 속에 꽃을 피우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 사는 것이 무료하고 지겹고 시들해 지고 만다.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두고 딴데서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헛 수고일뿐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지금 바로 그 자리가 자기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스님께서 붙이신 부연설명에서 필자는 고심했던 숙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