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비 문 찬인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 중에는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한 인물이 많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많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객지에서 살려하니 어쩔 수 없이 독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물건을 사고팔아 이윤을 남기는 상인의 길이 가장 손쉬운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객지에 나가 돈 번 사람이 많다.

중상주의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가 만개하면서 지금은 바야흐로 상인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보이지 않는 계급이 경제력으로 구분되고, 그 경제력이라는 피라미드의 끝에 올라선 사람들이 다름 아닌 상인이다.
지금은 시대의 총아가 상인이지만 토지를 기반으로 하던 농업경제시대에는 천시 받던 집단중의 하나였다.
왜 동양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상인(商人)이라 부르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맨 끝에 자리매김 하였을까?

중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夏)나라로 불리는 전설의 시대 이후 상(商)나라로 불리는 역사시대 최초의 나라가 나온다.
정식 이름은 상나라였지만 이들의 도읍지가 ‘은’지방 이었기에 ‘은나라’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중국 서북부 일부를 지배한데 불과한 조그만 청동기 국가였고, ‘은허’에서 갑골문이 발견되어 그 실재가 알려진 나라다.
상나라 사람들은 상당히 야만적이었고 폭력적이었으며 퇴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 복속된 다른 종족의 반발을 사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왕 주(紂)는 주지육림(酒池肉林)과 음란무도한 폭군의 대명사로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달기(妲己)라는 여자를 총애해서 그녀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사기 史記>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상나라의 폭정에 반발하여 제후국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한 연합세력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상나라 유민들은 중국 전체에 뿔뿔이 흩어져 갔다.
이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고, 반란의 우려로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농민이 될 수도 없었다.
땅을 가질 수 없으니 자연스레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고, 흩어진 그들의 동족끼리 서로를 돕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점차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상나라 유민들이 하는 일로 천시하는 풍조가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상나라 사람 즉 상인(商人)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한다.

요즘 홍콩, 중국의 광동성, 복건성, 대만 뿐만 아니라 필리핀, 싱가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중국 상인 화상(華商)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한족이 아니라 객가인(客家人)이라고 한다.
객가인은 ‘타향에 사는 사람들’ 이란 뜻으로 고향을 떠나 이주 생활을 하는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다.
객가인은 원래 중국 황하 북부에 살았으나 삼국시대, 오호십육국시대 때의 전란을 피해 대규모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남으로 내려와 홍콩, 광동성 등의 중국 최남단까지 왔고, 일부는 대만, 필리핀, 싱가폴, 인도네시아까지 그들의 생활기반을 옮겼다.
현재는 중국 남부를 비롯해 세계 80여 개국에 8천 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타향에 살면서도 고유의 객가 문화를 유지하고, 고유어인 객가어를 사용한다.
중국의 유태인이라 불리는 객가인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 하여 아시아 최고 재벌 청쿵그룹 이가성(李嘉誠)회장을 비롯한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였다.
태평천국의 창시자 홍수전, 신해혁명을 일으킨 중국의 국부 손문, 등소평, 이등휘 대만총통, 이광요 싱가포르총리 등이 객가인의 후손이다.

하동에도 많은 객가인들이 살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고향을 떠나 하동으로 이주해 온 하동판 객가인들이 ‘귀농귀촌’이란 이름으로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다.
귀농귀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IMF 경제위기 이후이니 20여 년 간 아무리 작게 잡아도 2000여세대 이상이 들어왔다. 하동 인구의 20%이상이 하동판 객가인인 셈이다
하동의 객가인들 중에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과 세상을 좀 다르게 살아가는 방외지사(方外志士)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제각기 폭넓은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하동을 알리기도 하고 , 하동 산물을 도시민에게 팔기도 하며, 추종하는 팬들이 열광적으로 하동을 찾기도 한다.
박남준 시인, 이원규 시인, 이창수 작가 등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들이다.
이외에도 지리산 10대 도인을 위시한 많은 기인들이 하동의 산하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고 있는 출향 하동인들이 하동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향인 하동에 들어와 살고 있는 ‘객가인’들도 하동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요자산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객지놈이다.
그들을 우리에 담고 활용하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객가인 스스로도 지역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토착민과 객가인들이 마음의 담을 허물고, 하동이란 우리 속에서 다함께 걸어가도록 당국의 정책적 혜안과 대안강구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더 큰 하동을 위해서도 객가인들의 능력과 자산을 활용하는 방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