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 찬인

人走茶凉 (인주차량)
사람이 떠나면 차도 식는다.
권좌에서 물러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냉랭해진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우리 속담이 있다.
정승이 죽으면 식사를 다 마치고 문상을 가고,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식사를 중단하고 문상을 간다.

門前雀羅 (문전작라)
글자 그대로 문 앞에 새그물을 쳤다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급암과 정당시라는 두 충신이 있었다.
한사람은 성품이 대쪽 같아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편으로 사람들이 모두 어려워했고,
또 한사람은 후덕하고 겸손하며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문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일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게 생각했다.
이들이 권세를 잃고 불우한 신세가 되자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이 야박한 세태를 비판했다.
“두 사람과 같은 현자(賢者)라도 권세가 있으면 손님이 끊이질 않고, 권세를 잃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모두들 발길을 끊는 바람에 집안이 너무 고요해 마치 문밖에 새 그물을 쳐놓은 것 같더라.
그러니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할 나위 있겠는가?”

오래전 현직에 있을 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두건의 청첩장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한 날 한 시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장소가 달랐다.
하나는 진주고 하나는 창원이었는데 어딜 가고 어디는 봉투를 보내야 할지 참 난감하였다.
한곳은 현직 국회의원인 친구였고, 한 곳은 현직에 계실 때 참 아껴주시던 선배 공무원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며칠을 두고 고민 끝에 국회의원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가고 말았는데 아직도 마음에 선배 공무원에 대한 죄송함이 그대로 있다.
권세 있는 곳에 잘 보여야겠다는 얄팍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엊그제 아는 분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기에 문상을 다녀왔다.
장례식장에 그 흔하디흔한 조화들이 하나도 없었다. 상주가 조화사절을 미리 알렸기 때문이다.
사실 돌아가신 분은 생전에 뵌 적이 없는 분이다.
우리나라 장례식에서는 상주가 주인공이다. 장례식 참석여부와 조의금 액수는 고인보다는 순전히 상주의 영향력에 달려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다는 속담 그대로이다.

전, 현직 군수 간에 묘한 흐름이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 파다하다.
두 분의 전직군수는 하동의 소중한 자산이다.
두 분의 축적된 경험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우리가 잘 활용한다면 지역발전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현직을 떠난 인적자원을 경원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왔다.
전직을 우대하고 따르면 현직의 설자리가 좁아진다는 정치 공학적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경륜과 능력 또한 우리가 돈 들여 형성시켜준 공적자원이 아닌가?
군민들은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똑똑한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동이 가진 모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누가 더 지역을 발전시키기고 누가 더 군민을 행복하게 해줄지를 바랄뿐이다.

도비의 순진한 생각으로는 두 분의 전직군수와 의회의장을 지내신 분들을 모두 모셔서 군정 자문회의를 만들면 어떨까?
모두들 선거 때 하동을 사랑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분들이니 현직 군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적극적으로 협력해주지 않을까?
특히나 현직을 떠나있어 많이들 외로울 터인데 일정 부분의 역할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그분들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요즘은 적막강산이다
마누라도 딸네 집에 가고 없고, 그렇게 울려대던 휴대폰도 잠잠해진지 오래다.
집밖을 나서본지도 꽤나 되었다.
공부한다고 책을 펼치지만 마음엔 세상일이 가득 차 있다.
세상의 일을 멀리하고 자연과 함께 살겠다는 생각은 생각에 그치고 자꾸 세상일에 뛰어든다.
한 달에 두세 번 글을 쓰서 신문사에 보내는 것도 세상일이 되어버려 이제 절필할까 생각중이다.
사람이 떠나면 차도 식는다.
친구도 친척도 동창도 없는 하동 땅에서 그나마의 인맥이 현직에 있을 때 알았던 사람들인데...
조석으로 변하는 세상인심에 나를 기대게 한 것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든다.

一死一生卽知交情 (일사일생 즉지교정)
한번 죽고 한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貧一富卽知交態 (일빈일부 즉지교태)
한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貴一賤卽見交情 (일귀일천 즉현교정)
한번 귀하고 한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이 나타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