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 찬인

10여년전 쯤 mbc tv에서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여 꽤 인기를 끌었었다.
당시 주몽의 상대역으로 ‘소서노’라는 여인이 등장했고 우리는 역사에서 잊혀졌던 당대의 여걸을 새롭게 만났다.
소서노는 어떤 여인이기에 단재 신채호선생께서 ‘조선상고사’에서 이르기를 ‘우리민족 최초의 국모’라 하였을까?
또 MBC에서는 어떤 연유로 ‘한민족 역사가 기억하는 최초의 여왕’ 이라는 칭호를 올렸을까?

졸본부여의 희망 소서노
역사는 잃어버린 우리 땅 만주에서 시작된다.
중국 길림성 환인현 오녀산성, 졸본부여가 위치해 있던 곳이다.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왕 연타발의 둘째공주로 태어났다.
아들이 없었던 연타발은 희망을 소서노에게 걸고 어려서부터 제왕의 수업을 가르쳤다.
오녀산성은 불과 다섯 명의 여인이 500명의 적군을 물리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소서노는 영특했고 기개가 대단했다.
소서노는 자라서 북부여 해부루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에게 시집가 비류(沸流)를 낳았으나 우태가 전쟁에서 죽자 졸본으로 돌아와 홀몸으로 지냈다.

주몽을 만나 고구려를 세우다
BC35년 동부여 금와왕의 큰 아들 대소의 추격병을 압록강에서 간신히 따돌린 21세의 주몽은 소서노가 있는 졸본부여로 피신해왔다.
처량한 망명객 주몽은 비류수가에 은신하여 때를 기다린다. 이런 주몽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소서노를 유혹한 주몽, 젊고 용기 있는 영웅을 알아본 소서노.
8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급격히 가까워져 결혼을 하게 된다.
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력과 재력으로 주몽을 성장시키고, 뛰어난 장수와 민심이 주몽에게 쏠리도록 한다.

BC37년 결국 소서노는 주몽을 졸본의 왕으로 옹립하여 오녀산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고구려 건국에 쏟아 부은 소서노는 왕비가 되어 둘째아들 온조(溫祚)를 낳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창업하는데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총애했고 비류를 자기자식처럼 대하였다”고 한다.

동부여에서 온 유리가 태자가 되다
주몽이 왕위에 오른 지 19년이 되던 해, 이미 집권기반은 탄탄해졌고 나라도 안정되어 있을 때이다.
동부여에서 부러진 칼을 들고 유리가 주몽을 찾아왔다.
주몽이 크게 기뻐하고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소서노는 심한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했다.
당시 토착세력이었던 소서노의 졸본부여계와 외래집단인 주몽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전개될 일촉즉발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유리를 다음의 왕으로 삼으려는 주몽의 집요함과 배신을 목도하면서도 소서노는 침착했다. 그리고 탁월한 결정을 내렸다.

대방고지에서 백제를 건국하다
BC19년 9월 주몽이 서거한 직후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 신료와 백성들을 데리고 압록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유리의 방해를 물리치고 끝없이 이어지는 처참한 망명길 이었다.
1년여의 긴 여정 끝에 평양과 인접한 대방고지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정착하여 새 나라를 열기로 한 소서노는 비류를 왕으로 하는 백제건국을 선포하니 이때가 BC18년이다.
중국의 ‘북사(北史)’ 와 ‘수서(隋書)’에 백제가 대방고지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백제가 점차 나라의 기틀을 갖추어 가자 단순한 망명 집단이 아닌 것을 알아챈 평양의 낙랑이 사사건건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
낙랑과 말갈의 연합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국력이 쇠퇴해지고 신민의 희생이 커지자 소서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성강을 도하해 또다시 개성 쪽으로 나라를 옮긴다.
개성으로 피신한 이후에도 낙랑과 말갈의 압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BC9년 개성 송악산 부근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으나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온조가 십제(十濟)를 세워 분립하다
전쟁에서 패한 소서노는 개성에서 조강을 건너 배를 타고 해빈 미추홀로 남하 하였다.
지금의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 포구이다.
우태와 주몽에게 두 번 시집갔다가 두 번 모두 실패한 소서노의 운명에는 또 다른 비극이 배태되어 있었다.
비류와 온조, 한 형제이기는 하였으나 아버지가 달랐고 이들의 기질마저도 판이하게 달랐을 뿐 아니라 추종자들도 그 계열이 달랐다
바닷가에 살기를 원했던 비류와 내륙에 정착하려던 온조의 의견대립으로 BC7년 비류의 해빈 미추홀과 온조의 직산 위례성으로 분립하여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만다.

비운의 여왕 온조의 성에서 죽다

사태가 빗나가 버리자 소서노는 양 진영을 왕래하며 결합을 호소하는 한편 분립을 주장하는 온조 측의 강경파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비류와 힘을 합하여 온조의 강경파를 제거하려던 음모는 실패하고 이 과정에서 61세의 국모는 무참히 시해된다.
이때가 BC 6년 3월이다.

역사가 소서노를 잃어버린 이유
소서노에 대한 기록을 우리 역사서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고대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온조왕 편에, 이후에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고구려, 백제를 건국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소서노가 이렇게 역사에서 소외된 이유는 무었일까?
백제본기, 유기 등 삼국시대에 집필한 역사서는 전하지 않고 고려, 조선시대의 사가들은 거의 유학자들었다.
유교적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서노는 절개를 지키지 않고 재가한 과부였으며, 정실부인이 아니었고, 남편을 두고 집을 나간 아주 못된 여성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으니 가히 반역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성 역사가들은 일부종사, 현모양처가 아닌 소서노를 아예 외면해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