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문 찬인

백성(百姓)은 누구인가?
옛날에는 성씨(姓氏)가 있는 사람을 통칭하여 백성이라 불렀다 한다.
옛 중국이나 고려, 조선 초에는 성씨가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귀족이거나 부유층인 것을 의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말, 선초까지 백성이 촌락의 지도자 즉 촌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금에야 성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백성하면 당연히 온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연이어 겪으면서 우리사회의 제 1화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었다.
이 말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논어(論語)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로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니 서로 신의를 지켜 서로 의지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의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을 풀이하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말짱 황이다’라는 뜻 일게다.

2008년 봄 광우병 촛불시위가 벌어졌을 때 이 명박 정부는 ‘말도 안된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하였지 아무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놀라서 숨기만 했다. 계란 몇 개 맞거나 멱살 잡힐 각오로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 정부안에 없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집권 반년 만에 국정추진 동력을 잃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과 경악에 빠졌을 때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을 만나는 당시 정홍원 총리의 가당찮은 발언이 TV로 생중계되어 전 국민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현장에 다녀 오셨는지?”
“다녀오지 못했다.”
“총리께서 아이들의 시신이 어떤 모습인지 봐달라.”
“일정 때문에 오늘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
국민의 마음을 모르는 전형적인 관료의 모습이다.
그때 유족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렸다면 정부가 그렇게 욕먹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1년 여 만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국민들이 우왕좌왕 불안해하기 시작하였으나 정부는 ‘전염력이 약하다’, ‘병원이름은 공개할 수 없다’ 등 안이한 대처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메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게 만들었다.
국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는데 ‘동대문 상가에서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다’ ‘한국에 와서 메르스 걸리면 1억 보상한다’ 는 등의 정신빠진 당국자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정부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사회 경제적 여파가 수습이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초기에 비장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밝히고 협조를 호소하였다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준표 발 무상급식 중단으로 도내가 뒤숭숭한지도 여러 달이 지난 6.11일 쯤이다.
하동군 의회 건물 앞에 수십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서 ‘서민자녀지원조례안’처리를 반대하고 있었다.
회의는 오랜 진통 끝에 학부모들의 염원을 뒤로 한 채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말았다.
학부모들이 점점 격앙되어가고 있을 때 의회에 참석한 군수가 다른 일정 때문에 학부모를 밀치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 나갔다.
학부모들이 대화를 하자면서 군수를 뒤쫓기 시작하고 공무원들이 학부모를 막아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차라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이리저리해서 재정이 열악한 하동의 입장에서는 도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노라’
그렇게 팔 걷어 부치고 대화를 나누었으면 누가 군수를 나무라겠는가?

최근의 우리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도,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지도 못했다.
차갑고 권위적이며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다.
이것이 옳은 길이니 ‘따라와라’ 식의 통치는 통하지 않는다.
백성을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시대가 바뀌었다.
냉철한 이성보다는 따뜻한 감성이 오히려 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다.

남다른 업적이나 장미 빛 미래보다 돌발적 위기에서 국민적 고통에서 같이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기를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옛날 가뭄이 극심했을 때 왕은 수라를 줄이고 삼베옷을 입고 모든 것이 짐의 부덕이라며 기우제를 지냈다.
그때라고 기우제 지낸다고 비가 올 것이라 생각했을까?
왕이 직접 나서서 백성들의 근심을 어루만지기 위해 고통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백성은 무엇으로 믿음을 가지는가?
국가가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서 믿음은 시작된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 다소 미숙하고 서툰 대응이 있더라도 지도자나 정부가 진정으로 같이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백성들은 위로와 감동을 얻고 위기극복에 다함께 힘을 모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