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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논설위원의 삶과 생각(64)만화책과 인생, 그리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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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07  13: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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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논설위원(경남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아들과 얘기를 하던 중에 엉뚱한 소리를 하나 들었다. 언젠가 큰 상을 받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수상소감을 준비 중이라 했다. 아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냐고 했더니 전혀 그럴 일은 없지만 자신이 몽상가이기 때문에 그냥 쓸데없는 생각 중의 하나라 했다.

서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만일에 현실이 된다면 무슨 얘길 할 거냐 했더니 대답은 만화책 이야기로 시작할 거란다. 무릎을 쳤다. 그 수상소감은 나와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다.

아들은 서른 초반으로, 식당을 하나 하고 있다. 학창시절 아들은 만화책을 좋아했다. 학교 공부에 집중할 시기에도 여전히. 그러나 부모로서 말리지 않았다. 만화책에도 순기능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좀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면 만화책을 통해서라도 또 다른 관심사를 발견하고 소질을 계발할 수도 있을 것이란 그런 믿음 말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만화책도 활용만 잘하면 멋진 인생을 만들어 가는데 훌륭한 교과서가 되고도 남는다. 흥미롭게 다양한 삶을 살펴볼 수도 있고, 간접 경험을 통해 수많은 분야를 탐색하고 이해할 수도 있으며,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르는데 만화책만한 게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문제는 만화책을 빌리는데 돈이 적잖게 든다는 점이었다. 아들 만화책 대여비로 고민하던 어느날, 벽보 하나를 발견했다. “만화가게 폐업, 낱권 판매.” 천재일우의 기회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로 가게를 찾아가 헐값에 만화책 2,400권을 몽땅 샀다. 트럭으로 책을 실어와 아파트 앞에 내려놨을 때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충분히 상상도 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이 좋아하는 걸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부모의 최선이란 생각에서.

만화를 통해 배운 게 있느냔 질문에 아들 대답이 상상 이상이었다. 첫째는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이해라 했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사, 운동선수, 연예인, 의사, 소방관, 경찰, 회사원, 사업가, 사장, 회장 등 각계각층의 캐릭터들을 통해 수많은 인생을 재미있게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성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을 때 분위기가 -’해지고,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분위기가 살아나며, 어떻게 하면 남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지와 같은 수많은 처세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 거였다. 마지막으로는 유머와 순발력이라 했다. 가슴이 찡해왔다. 아빠의 바람이 통했다 싶어서.

이사를 할 때 만화책을 버리려 했다. 하지만 아들 반대로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가져와 방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다. 책을 버리려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참으로 엉뚱하다. 훗날 성공을 했을 때 만화책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이유다. 몽상도 이런 몽상이 없다. 참으로 멋지다. 아들은 이미 먼 훗날의 성공을 머리에 그리고 오늘을 살고 있다. 난 이런 아들이 너무나 좋다.

인생, 모두가 꼭 같은 길을 걸을 순 없다. 꼭 같은 행복을 얻을 수도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찾아 즐기면서 각자의 맞춤형 행복을 찾아 살아가면 될 뿐이다. 그런 삶이 곧 성공이요 최대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바라보는 성공과 행복의 범주는 너무나 한정적인 것 같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에도 행복은 분명 너부러져 있을 수도 있는데.

 

난 그동안 행복에 대한 부모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그리고 공부를 좀 못해도 자녀가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 일로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 믿음과 실천이 헛되지 않았으면 참으로 좋겠다.

 

아들의 수상소감 마지막 멘트란다. “만화책을 즐겼던 제가 결코 외도(外道)가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덧붙여 요런 말도 한 마디 했으면 좋겠다. 인생! 너무 심각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한 바탕 즐겨볼만한 연극판이라고.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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