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살다보면 내가 참 미련하단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생각이 짧아서, 혹은 판단이 너무 성급해서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단 말이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한 후에 행동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도 뻔한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주 반복하는 반성문이다.

얼마 전에도 생각하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 하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너무 좁아 이중 주차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날도 내가 세워 놓은 차 뒤에 누군가가 ‘티(T)’자 모양으로 차를 세워놓았다. 브레이크가 풀린 상태여서 밀면 쉽게 움직이겠다 싶어 ‘주-욱’ 민 것이 사고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차주가 주차를 할 때 앞바퀴가 정면을 향하도록 해 놓았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비뚤어진 상태로 주차를 해 놓은 결과 엉뚱한 데로 밀려가 다른 차 꽁무니에 닿아 밀리던 차 앞뒤 문짝 옆구리가 깊게 파이고 말았다. 아뿔싸! 바퀴 상태를 확인한 뒤에 살짝 밀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일이다. 결과적으로 가슴이 저릴 만큼의 수리비를 물어주고야 말았다.

물론 이 같은 비슷한 사고는 항상 내 쪽에서만 만들어 지는 건 아니다. 피해자가 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피해를 당했을 땐, 사고를 낸 사람의 가슴이 쓰리겠단 생각이 들 정도의 경미한 경우엔 수리를 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준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내 차는 이리저리 상처가 많은 편이다.

엊그제는 아들이 타고 다니는 차가 피해를 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이었다. 새벽에 차를 빼다가 세워둔 아들 차를 박은 모양이다. 가해자는 아들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놓고 수리비를 청구하면 곧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들은 이곳저곳 카센터에 사진을 보내 견적을 받아보았고, 대부분 견적이 40만원을 훌쩍 넘었다. 아들은 상황을 가해자에게 알렸고, 가해자는 적잖은 금액이었지만 수리를 허락했다.

그런데 차 상처에 비해 수리비가 너무 비싸단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가 많이 억울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견적 받은 곳에다 바로 맡기지 않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우리 부자(父子)는 좀 더 싸게 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10만원에 출장수리를 해 주겠다는 분을 찾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저렴하게 수리를 마칠 수 있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울 일인가? 이 일을 계기로 별 왕래가 없던 두 집 사이에는 서로 믿고 감사해 하는 관계가 되었다.

어느날 우리집 대문 앞에 선물이 놓여 있었다. 그 댁에서 갖다 놓은 것이었다. 이에 우리가 감사의 의미로 자그마한 선물로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또 그쪽에서 선물을 놓고 갔다. 으악! 세상에…. 어쩌면 불미스런 일로 인해 좀 껄끄러운 사이가 될 수도 있었던 관계였다. 그런데 서로를 배려하고 감사해 하다가 이 같은 ‘선연(善緣)’으로 발전이 되었다.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어디 있을까? 선물을 또 받았으니 이번엔 우리 쪽에서 답례를 해야 할 차례다. 어떤 선물이면 좋을까? 고민하다 화개장터 친구에게서 도토리묵을 사다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하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는 의미다. 살다보면 대부분의 일이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지만, 때론 상대 입장에서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면 삭막해질 수도 있는 세상이, 또 인간관계가 이처럼 아름답게 영글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된다.

살다보면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만들고자 ‘덤테기’를 씌우기까지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래서 양귀자는 소설 ≪모순≫에서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라 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고도 했다. 인간의 못된 심보를 완전히 부정할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내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오늘따라 하늘이 참 맑고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