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을 앓는 어머니가 자꾸 어린아이처럼 군다

죽 대신 과자를 먹어서 야단을 맡기도 하고

아픈 데도 병원을 안 가겠다고 떼를 쓴다

오늘은 억지로 입원시킨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갔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무순 병원이냐며 고집을 부린다

이 나이에 찾아온 병은 갈 때가 되어서 온 것이라며

자식 고생시키지 않고 부를 때 순순히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고 야단을 치며

말 안 듣는 아이처럼 굴지 말라고 타이른다

이제는 서로의 입장이 바뀌어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내 딸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직도 내가 외출하면 마음을 졸이며 기다린다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 다시 어린애가 되었어도

끝까지 어머리라는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참 무섭다.

문숙 시집 『불이론』 -시작시인선383 -중에서

-위 시를 쓴 문숙 시인의 고향이 금남면 노랑 어름이다. 하니 위 시의 주인공이 되는 어머니 또한 노량해협의 짭쪼롬한 바람을 기억하고 계셨을 터이다. 그 짠내 속에서 아득바득 시인을 어르고 달래서 키워냈을 터, 하여 더 반갑고 퍽이나 서운한 작품이다. 이 시집의 다음 쪽 <싱크홀>에서 “한 사람이 떠난 자리가 움푹 파였다”라거나 “물먹은 바람 하나 버려진 고아처럼 떠돌고”있다며 “온몸으로” 어머니가 남기고 떠나신 온기를 찾아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끝내 어머니라는 위치를, 사랑을 놓지 않으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무섭다. 아침마다 “술 좀 작작 마시라”며 나무라시는 내 어머니도 참 무섭다. -최영욱-

※. 문 숙 시인은 -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나 200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단추』. 『기울어짐에 대하여』 등이 있으며, 동국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 2005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