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참을 잤을까. 목이 말라 잠깐 눈을 뜰 때였다. 날은 이미 져서 바깥은 캄캄했다. 주인 여자 방에서 두런두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매캐한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전자에 물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마당에 물을 뜨러 나가다, 복도에서 퇴줏그릇을 밖에 내놓으려던 주인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디?”

“네, 물이 없어 마당에 물 좀 뜨려구요.”

그녀는 간단히 묵례하고 먼저 마당으로 나갔고 나는 뒤를 따랐다.

“오늘 누구 제사가 있는 모양이죠?”

나는 수돗가 옆에 있는 큰 물통에 바가지로 물을 뜨면서 건성으로 물었다.

“네. 저기요…, 손님들 다 가고 나면 우리 술 한잔 하실래예?”

의외였다.

나는 순간, 오늘 제사가 행여 그의 남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녀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녀에게 남편의 근황을 물었을 때도 그녀는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집안 곳곳에 남자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들이 가고 난 뒤, 그녀는 술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챙겨, 삼 년 전 우리가 함께 놀던 평상으로 왔다. 날씨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안방에서 끌어당긴 전기스토브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나보다 두어 살 밑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첫눈에 매우 순박하고 사람이 성실해 보였다. 고향이 이곳인 그는 도시에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는 순순한 그에게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주인 여자와 결혼과 동시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민박과 겨울철 길 안내를 하며 살았다. 그날 우리는 밤새 주인집 내외와 함께 술 마시며 놀았다. 나와 민주는 특히 그의 순수하고 맑은 심성에 매료되어 진지한 대화를 많이 나눈 것 같다.

“언제 그리되었습니까?”

주인 여자는 술에 반쯤 취해있었다.

“벌써 이년하고도 반년이 넘었네예. 여름철, 손님들이 갔다 가고 그해 겨울이었으니….”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의 남편이 사고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저 망자의 유족들에게 흔히 묻는 말로 “혹, 무슨 지병이 있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고였지예.”

내 짐작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날도 눈이 억수로 왔어예. 우리 집 양반이 낮잠 자고 있는데, 갑자기 길 안내를 해달라고 어떤 여자한테 전화가 왔어예.”

“여자요?”

“네. 그래서 제가 극구 말렸다 아임니꺼. 그런데도 그 양반은 내 말을 안 듣고 기어코 나갔단 말입니더. 쌍계사 입구에서 전화한 여자를 만났는데 글쎄, 그리 눈 내리고 위험한 날씨에 불일폭포까지 안내해달라고. 미친 년이지.”

그녀의 말에 내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래서요?”

“결국, 폭포 위에 올라간 그 여자는 우리 집 양반보고 휴게소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예. 하도 강압적으로 말하기에 우리 집 양반이 내려가다가 느낌이 이상하다 싶어 도로 올라왔어예. 그런데 그때 ….”

“그때?”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미친년이 폭포 위에서 몸을 던졌다 아임니꺼.”

그녀의 얘기가 계속될수록 나는 기분이 묘했다. 그때 정황으로 봐서 그녀의 남편이 안내한 여자가 혹 민주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삼가기로 하고, 그녀에게 이후 남편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새 그녀의 눈은 물기로 촉촉했다.

“집에 돌아온 후로 그 양반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지예. 경찰서에도 몇 번 불려갔다. 오고 하더만, 그날 이후로 매일 술만 먹었지예. 그런데 술만 마시면 그 여자는 자기가 죽였다카데예. 사람이 모질지 못해놔서. 그라다가 어느 날 내가 없는 틈을 이용해서 산을 타다 그만 실족사해버렸습니다. 장소도 그 폭포 근처라예.”

사람이 순수하고 순박한 것이 화근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 여자가 죽은 게 그의 탓일까. 듣고 있던 나로서도 참 안타까웠다. 그보다 나는 죽은 여자가 과연 민주일까, 하는 생각에 입술이 타들어 갔다.

“혹시, 죽은 그 여자분에 관해서는 아시는 게 있습니까?”

그러자 주인 여자는 내게 ‘버럭’, 하고 화를 냈다.

“그 가시나 죽을라먼 지 혼자 뒤지지, 와 우리 아 아버지까지 끌어댕겨가지고.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립니다. 그 양반이 죽기 전에 그러데요. 그 여자는 저번 여름에 우리 집에 온 사람이라고. 그런데 우리 집에 온 사람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 그… 뭣이라더라? 도시에서 간호원 노릇했다고 그러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