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면 어둑해지는 두 손이 보기 싫어

툭하면 월경越境을 하던

너는 날아가는 길을 택한 거야

교수형이 집행된다며 나팔을 불던

백 년 전을 우리는 모르지

오래 고인 슬픔이 시커먼 빛을

글썽이는데

시계탑에 내리는 비처럼

네가 지나갔는지 모르지

더럽고 더러운 강물이 철교를 밀어보듯

꿀꿀 흘러갔을지 모르지

혼자 치는 화투처럼 밤이 올 테지

닮은 그림이라도 뒤집고 싶어

감은 눈 속에 달이 뜰 톄지

조혜경 시집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모악시선 22 -중에서

- 오후 여섯 시는 여럿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낮달이 뜨는 오후거나, 조금은 어둑시근해지는 저녁이거나, 코트 깃에 얼굴을 파묻듯 하고 길을 재촉하는 밤이거나. 계절에 따라 “오후 여섯 시”는 다른 얼굴을 지니고 우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더러는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자 술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할 터여서 정겨운 시간이라면, “오래 고인 슬픔이 시커먼 빛을 글썽”일 때 오후 여섯 시는 외롭고 쓸쓸하여 낮게 엎드리는 시간일 것이다. 차라리 “혼자 치는 화투”판을 뒤엎고 어디 술집이라도 찾아 나서자. 이래저래 오후 여섯 시는 달콤하거나 외롭거나 괴롭거나 할 것이다. 여럿의 얼굴을 지닌 오후의 여섯 시를 매일 돌파하며 살아야 함은 어쩔 수 없음이다. 하여 시간을 순하게 다스려야 할 터이다. - 최영욱 -

*. 조혜경 시인은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2012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하였고, 순천향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간호학을 전공,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