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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백제고시원(12. 마지막회)
하동군민신문  |  hdgm9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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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08  17: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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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아무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 내년도까지 이어질 지도 모른다, 고 아나운서는 준비된 원고를 내려다보며 읽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슈퍼로 들어갔다. , 저거 용식이 아닌가? 기원이 알아보았고, 용식이 헹님, 여게 와서 한 잔 하소. 주대가 소리쳤다. 곧이어 용식은 비틀거리며 슈퍼를 나오며, 외상 달아놓으라니까 그러네, 씨펄. 했다. 그리고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시원으로 향했다. 이어 뚱땡이 주인이 따라나오며, 이 새끼야, 니가 언제 돈 갚을 줄 알고 외상이야.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저 새끼 저거 오늘 밤에 분명히 무슨 사고 칠 게 분명해. 그러자 미래의 킬러가 주인을 불렀다. 아따, 뭘 가져갔는데 그라요. 내가 돈 주께. 그러자 주인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아니, 라이터 기름 한 통 가져갔는데, 돈을 언제 준다는 말도 한마디 없이 마구잡이로 가져가면 안 되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건 걱정이 되었다.

작년인가 재작년 쯤, 주대와 기원이 고시원에 오기 전에 술을 마시고 길가에 세워져 있던 차에 불을 지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그 일로 몇 푼 저금했던 돈을 다 까먹고 말았다. 게다가 오늘 낮에도 곤욕을 치르고 고시원을 뛰쳐나갔다. , 이 새끼야, 나는 뭐 흙 파서 장사하는 줄 아냐? 방값을 못 줄 형편이면 나가야 될 것 아냐. 왜 나가지도 않고 퍼질러 앉아서 지랄이야, 지랄은. 점심 먹으러 나온 용식을 보자마자 고시원 안주인이 악다구니를 퍼부었던 것이다.

평소 욱하는 성미로 보아 슈퍼 주인의 말대로 무슨 사고를 칠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 두세 갑의 담배를 피우고, 밤이면 재떨이를 뒤져 꽁초를 찾는 용식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누야, 헹님하고 둘이서 선금으로 돈을 나한테 주먼 내가 아이에스(IS)를 찾아가서 테러 교육을 받고 오는 기라. 거 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있잖아. 그라모 나는 전문 킬러로 거듭나서 좋고, 헹님이랑 누야는 보기 싫은 새끼들 제거해삐리서 좋은 기라. 미래에 제거될 나쁜 새끼들의 운명에 우리는 건배했다. 그래, 그런 킬러 이야기를 소설로 써볼까? 그러려면 주인공은 주대보다 키도 크고 더 잘 생긴 만능 스포츠맨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주인공도 있어야 하겠지? 나 같은 지적 능력이나 쿨한 성격 정도면 괜찮겠고, 그래, 너무 말라선 곤란하겠다. 악한은 그 새끼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 직업을 바꿀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그 새끼보다 더 나쁜 새끼는 없을 거야. 그래, 건배다. 하루 종일 꿀꿀하고 오물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기분 나쁘던 것이 이제 좀 풀리는 것 같다. 건배, 복수를 위해. 건배, 미래의 킬러를 위해. 건배, 내 책의 주인공들을 위해.

고시원 복도는 냄새나고 더럽다. 그나마 침침해서 더러운 것이 덜 드러나 조금은 낫다. 우리 셋은 어깨동무를 풀고 하나씩 들고 있는 깡통맥주로 마지막 건배를 외친다. 아이썅, 조용하고 처 자빠져 자. 누군가 욕을 퍼붓는다. 그래도 우리는 기분이 좋다. 우리는 킬러다, 우리는 복수를 한다,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동지애를 과시하며 서로 깊게 그리고 오래 포옹을 한다.

나는 침대에 널부러진다. 몸이 덜거덕 소리를 내며 침대에 쏟아져내리는 것만 같다. 조각조각 해체된 내 몸들은 나른하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장 킬러 이야기를 써야겠다. 조각난 몸들을 다시 끼워맞추는 일이 갈수록 어렵지만, 내일부터는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난다. 시골집 아궁이에 엄마가 장작불을 지펴 밥을 할 때 나던 냄새 같다. 아궁이에서 잘 익은 감자나 밤톨이 쏟아져 나올 것 같기도 하다. , 맵다. 연기가 눈과 코를 자극한다. 코와 입을 막고 눈을 질끈 감으면 나아질 것이다.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불을 지피다 말고 나만 홀로 두고 어디로 가버린 거야.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새 나는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서 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로 간 걸까. 그럼 나는 여기서 이대로 기다려야 하나, 나도 따라 바다로 나가야 하나.

용식이, 이 개새끼. 누군가 소리친다. 용식이, 그 씨발놈이 내 고시원에 불을 질렀어! 이 새끼, 어디 갔어, 죽여버리겠어! 고시원 안주인의 목소리도 들린다. 용식이, , 그 녀석이 군불을 지피고 있는 모양이다. 꿈속에서 내 동생이 된 용식이는 군불을 지피다가 집을 다 태운다. 그리고 잿더미가 되어 흔적도 없는 터에 작고 튼튼한 보금자리를 새로 지을 생각이다. 나는 동생이 된 용식이가 자랑스럽다. , 따뜻해. 그나저나 오늘 하루는 너무 길었다. 피곤하다. 자야겠다.

<그동안 하아무 단편소설 백제고시원에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 다음호부터는 2021년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지원사업(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 선정되어, 하동 평사리문학관에서하동 10을 집필 중에 있는 이인규소설가의 단편소설용서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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