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땅 한 귀퉁이 다압이라는 동네

섬진강 따라 흐르고 섬진강 따라 흐르고

맞은편 경상도 땅 강바람 시린 곳

하동이라는 동네 왼손잽이 총각머슴처럼

슴벅거리는 눈으로 강 건너 보며 늙는다

다압 뒷산 무등사(無等寺) 조석 예불소리에 한소식 얻어

섬진강 잉어들은 모두 가슴 들어낸 목어가 되고

건너편 하동 땅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고무줄넘기 한

범종소리에 귀 뚫려 경전선, 기적소리만 울려도

합장을 한다

가까운 이웃은 정이 얽혀 아픈 원수되기 쉽다고

5월, 아니 까마득한 그 이전부터 불러야 대답하는

그리운 거리만큼 떼어놓고 흐른다.

▲ 최영욱 시인

-. 어릴 적 강 하나를 사이에 놓고 손나발을 만들어 우격다짐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호롱불 혹은 카바이트 불빛을 조명 삼아 건지채를 강에다 던져놓고선 입질이 뜸하거나 심심할 적, 강 이쪽저쪽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되던 고함전쟁. 처음에는 심심파적으로 시작된 소소한 말싸움이 급기야는 감정이 섞인 욕지거리가 오고가고 더러는 물로 뛰어드는 시늉까지 할 즈음 어느덧 강은 새벽 물안개를 피어 올리다가 낮고 느리고 저미듯 파고드는 햇살 한줌에 자취를 감추면 그제서야 아뿔싸, 강 이쪽저쪽에서 더러는 도망치고 또 더러는 “니 나중에 보자”고 으르기도 하는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돈에 팔촌에 이쪽 하동에서 넘어간 동네 형님에 아저씨에 다들 아는 얼굴들이다. 강이라는 경계, 어둠이라는 기묘한 상태가 만들어낸 하룻밤의 희극이었다. 강은 설움 덩어리 같은 고약함을 지니고 흐른다. “가까운 이웃은 정이 얽혀/아픈 원수 되기 쉽다”는 시인의 말이 가슴을 “쿡”하고 찌른다. 동학이 그랬고 여,순이 그랬고 근자에는 5월이 그랬다. 섬진강가 23평 아파트에서 밤이면 밤마다 섬진강이 뒤척이는 소리를 자장가 삼고서야 곤한 잠을 이룰 수 있는 시인의 심성이 참 곱다. “5월, 아니 까마득한 그 이전부터/섬진강은/불러야 대답하는 그리운 거리만큼/떼어놓고 흐르”는 것을 아는 시인의 마음이 곱다 못해 아프다. 

► 김남호 시인은 1962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05년 시전문지<시작>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링위의 돼지>. <두근거리는 북쪽> 등이 있으며 디카시집 <고단한 잠>을 최근에 상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