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섬진강을 따라가려면

잠깐의 풋잠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구례에서 하동쯤 지날 때

섬진강은 해가 지는 속도로 흘러간다

어쩌면 지는 해를 앞세우기 위해

강은 제 몸의 만곡을 더욱 휘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는 길도 섬진강을 따라가므로

갈 길 바쁜 사람도 홀연 마음 은근해진다

나고 죽는 일이 괴롭다면 내처 잠들어

남해 금산 바닷물에 처박힐지 모른다

문득 깨어나 모골이 송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헛것이 이끌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다 섬진강 따라나선 죄일 뿐

정신 차리고 싶다면 쌍계사 절간 밑에서

은어회라도 바득바득 씹어보자

너도 이 먼 길을 취해 여기까지 왔구나

날것의 몸보시를 받다보면

출가와 환속은 한통속처럼 저물 것이므로

그러면 또 삶이란 죽음이란

녹슨 단풍잎같이 애면글면 글썽거릴 것이다

그렇다고 그 까닭모를 서러움을

섬진강 물결이나 가을볕에 기대지는 말자

▲ 최영욱 시인

-. 서두르지도 너무 여유를 부리지도 말고 꼭 해가 지는 속도로, 강이 흘러가는 속도만큼 걷는다. “여기서는 길도 섬진강을 따라가므로” 앞산이 지척이라 높다. 산이 높아 해는 빨리 지고. 물은 제 속도로 남해 금산에 가 닿는다. 강을 따라 거슬러 오르던 시인은 까닭도 없이 취하고 싶다. “날 것들의 몸보시”를 안주 삼아 술잔을 들면 “출가와 환속은 한통속” 저물고 만다. 어디 그렇다고 그 서러움이 꼭 흐르는 물 때문이랴. - 최영욱 -

►강연호 시인은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나왔다. 199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비단길>,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등이 있으며, 1995년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원광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