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를 보았다

새벽녘, 기갑사단

강물을 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집게발 포신 치켜세우고

팡팡 물대포를 쏘며

머리통 내밀어 눈알 부라린다

긱진 등딱지에 달린 철갑 이빨은

오래전 시간을 다듬어

물컹물컹 씹고 있다

야성의 긴장으로

집게발 사이 까맣게 자란 무쇠털이

뻣뻣하게 솟아 오른다

털게는 태초의 짠물을 찾아

논둑 타넘고 바위에 부딪히며

여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오랜 시간 담금질했을 바다의 기억

날카롭게 벼려

민물의 전차가 되었으리

▲ 최영욱 시인

하동읍 문화예술회관 앞 둑방에서 젊은 시인은 말없이 강을 내려다본다. 허나 강은 말이 없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는 옛 섬진다리 옆으로 대교라는 이름의 새 교량이 놓였지만. 옛 다리의 기억은 생생하다. 포탄 자욱이 숭숭 뚫려 있던 교각이며 상판. 시인은 그때의 옛 다리 위로 장갑차를 앞세우거나 혹은 소달구지 위에 실린 무기들을 기억한다.

모두가 민족을 겨눈 무기들이었으나 강의 기갑사단들은 서로 싸우질 않는다. 종족보존을 위한 숭고한 임무만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지금도 그들은 “집게발 포신을 치켜세우고/팡팡 물대포를 쏘며” 강을 거슬러 올라 호암이나 검두, 혹은 화개 계곡 어디쯤에서 입담 좋은 술꾼들에게 몸보시를 하고 있을 것이다. 딱 지금 알을 잔득 품은 그 기갑사단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을 즈음이다. - 최영욱 -

► 정연홍시인은?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200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상을 박음질하다』. 『코르크 왕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