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나 알 만한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

실눈으로 그윽하게 바라보는 것

사라진 것이거나 사라지기 직전

눈을 잃은 친구의 눈빛처럼

보고는 있으나 보이지 않는 것

듣고 있어도 들을 수 없는 것

새로 쓴 무덤 앞에 술을 따르고

마셔도 맛을 알 수 없는 것

무덤에 피워둔 담배 연기처럼

한때는 걸어 다니는 소각로나 굴뚝처럼

세상을 다 태워버리고 싶었으나

동백꽃 한 송이

바람으로 밥을 삼고 비를 덮고 잠을 잔다.

시집 『멸종위기종』 중에서 <푸른사상>

▲ 최영욱 시인

-. 한 때 용광로 같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낸 시인이 있었다. “걸어 다니는 소각로나 굴뚝처럼/ 세상을 다 태워버리고 싶었으나” 이제는 바람에 순응할 줄 아는 이. 이제는 바람을 안을 수 있는 나이. 구름의 모양으로 비를 읽고, 바람의 냄새로 바다의 날씨를 읽는 어부처럼. “바람으로 밥을 삼고 비를 덮고 잠을 자는” 시인. 허나 세상의 풍향계는 늘 예측 밖이라서 시인은 해악의 바람에 분노하고 개탄하는 것일 터이다. “보고는 있으나 보이지 않는” 바람의 마음을 이제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려 편안하다. 세상도 그리하면 편히 보일 것이라 기대해 본다. - 최영욱 -

▲ 원종태 시인은 거제시에서 태어나 1994년 <지평문학>에 “향우회”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빗방울 화석>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