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하아무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더니 주대가, 에이~ 빌어묵을 세상, 했다.

행님, 내가 여게 올라온 지 두 달은 넘었고 석 달이 다 돼 가는데 그동안 이력서를 몇 번이나 냈는고 압니꺼? 백 번도 넘게 냈십니더. 그란데 백 번 다 떨어졌십니다. 주대의 맞상대가 되어주고 있는 기원이나 나도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다.

내가요, 지방이지만 국립대 다님서 학점도 좋고요, 토플 점수도 그런대로 괜찮아예. 지도교수도, 니 정도먼 금방 취직 될끼다, 했고요, 우리집에서도 여자친구 집에서도 다들 그렇게 믿고 있십니더. 그란데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됩니더.

나도 내 상황이 이해가 안 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원이나 빠리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고 나는 내 멋대로 생각했다.

인자는 집에다가 고시원 방값 보내라고 하기 미안해 죽겠십니더. 힘내, 곧 잘 될 거야, 라고 말하기도 멋쩍다. 처음 한두 번이지 백 번씩이나 그렇게 위로한다는 것도 기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 번씩 그런 일을 당한 주대도 당연히 힘들겠지만 백 번씩이나 적당한 위안의 말을 생각해내야 하는 우리로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잔을 들어 주대의 술잔과 맞부딪쳤다.

그란데, 오늘 그 면접관이라는 새끼가 내보고 머라칸 줄 압니꺼?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대를 바라봐 주는 것으로 관심을 표명했다. 그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도 명색이 아이티 관련업체고 내가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한다는 말이, 시골에서 농사나 짓지 뭐하러 서울까지 왔느냐. 그카는 기라요.

나는 면접관한테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보고 황당해서 암 소리 몬하고 있는데, 그 새끼가 또 옆에 있는 다른 면접관한테, 딱 보니까 농사 잘 짓게 생겼네, 하믄서 히히덕거린다 아입니꺼. 내가 얼굴이 벌개져서 나와가꼬 우찌우찌 지하철을 탔는데, 그때사 나도 모리게 눈물이 나는 기라요. 와, 그때사 속이 터질라카고 딱 미치겠는데, 그 때 그 자리에서 그 새끼 대가리를 안 뽀사삐린기 후회가 돼 죽겠는거라요. 주대는 눈물을 흘리며 자꾸 술잔을 비워댔다. 건너편에서 빠리 언니는 졸기 시작했다.

야야야, 그런 새끼 그만 잊어버리고 술이나 마셔. 듣고만 있던 기원이 어설픈 위로를 시도했다. 그런 새끼들이 있는 회사면 차라리 안 들어가는 게 백 번 나아. 나 봐라, 잘 나가는 벤처기업 다닌다는 내 꼬락서니가 어떤지. 내가 서른 중반에 저따위 고시원 신세를 지게 될 줄 알았겠어?

또 시작이다. 돌아가면서 넋두리하다가, 세상을 향해 원망을 늘어놓다가, 암담한 장래에 절망하다가, 지쳐서 고시원 구석으로 기어들거나 벤치에 늘어져 잠이 들 것이다. 용식이 있었다면, 올해 초 자신이 받을 임금을 떼먹고 도망간 반장 이야기를 한동안 더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참는다. 내가 그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고 절망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좁디좁은 쪽방에 들어가 재테크 고수와 쓸 수도 만질 수도 없는 11억 만들기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이들의 푸념이 훨씬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