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나는 초등학교 때 꿈이 정해졌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거였다. 중학교에 가서는 꿈이 바뀌었다.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는 것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다시 고문(古文)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는 걸로, 대학생이 돼서는 또 교수가 되는 것으로 꿈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계속 바뀌는 게 하나 있었고, 바뀌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바뀐 건 구체적인 ‘신분’이었고, 바뀌지 않았던 건 ‘교육자의 길’이란 ‘방향’이었다. 신분은 왜 자꾸 바뀌었던가? 계단을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이치처럼, 단계를 오를수록 더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꿈이 성장해갈 때 그 현장엔 언제나 본받고 싶은 삶의 모델이 계셔주었다.

요즘에 와서도 참으로 배우고 싶고, 따르고 싶고, 사모가 되는 어른 한 분이 계신다. 100세를 넘기신 김형석 교수님이다. 살아오신 삶도 삶이거니와, 차분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그 메시지는 물론이고, 몸짓과 표정 등에서 묻어나는 인품의 향기는 무슨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냥 가만히 바라만 뵈어도 교육이 되는 삶의 스승이시다.

글이나 말은 논리와 공감에 생명이 있다. 특히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강의에서는 청중에게 공감이 되는 말과 표현이 더욱 중요하다. 공감도 되지 않는 공허한 내용을 일방통행 식으로 쏟아내는 강사의 강연은 화자든 청자든 서로에게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강연은 음치가 부르는 노래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상황과 다름없다. 공감 없는 강연 역시 같은 이치다.

노래는 감미로운 ‘음악’이 되기도 하지만, 시끄럽고 짜증나는 ‘소음’이 되기도 한다. 노래를 고성으로 악만 쓴다고 음악이 될 수 없듯, 강연 역시 큰 소리로 강조만 한다고 명강이 될 수 없다. 강연이든 노래든 울림을 통한 공감이 전제되고 감동이 자연스레 가슴을 파고들 때, 서로에게 유익한 공명(共鳴)이 만들어지게 된다.

말에도 궁합이 있다. 똑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선 옥토에 뿌려진 씨앗처럼 튼실한 뿌리를 내려 제2의 생명으로 탄생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귓가의 바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화자만의 문제도 아니요, 청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로간의 궁합 문제일 수도 있다. 명강을 생각할 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가 늘 생각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3요소’는 강의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 남을 감동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로고스(logos)’, 즉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비논리적이거나 비약이 있게 되면 쉽게 공감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파토스(pathos)’로, 청중의 감성에 호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고스가 이성에 관한 것이라면, 파토스는 감성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은 에토스(ethos)로, 말하는 사람의 인격에 관한 것이다. 즉 화자가 가진 고유의 성품을 말한다.

그런데 ‘논리’와 ‘감성’과 ‘성품’, 세 요소 중에서도 중요도가 다르다고 했다. ‘논리’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하고, ‘감성’보다는 ‘성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논리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울림이 있으면 설득력을 얻는데 유리하고, 또 ‘논리’와 ‘감성’에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 훌륭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논리’와 ‘감성’은 어느 정도 노력 정도에 따라 해결이 가능할 수 있겠으나, 말하는 사람의 성품은 갑자기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설득의 3요소를 다 가지신 김형석 교수님이 참으로 위대해 보인다. 흉내라도 한 번 내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뭔가 건질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분필을 들고 마이크 앞에 서는 일이 늘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