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하아무

그런데 남편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그 년을 보니까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면서 그만 주저앉고 싶더라니까.

왜냐고? 너무너무 예쁜 거야. 날씬하고……, 나이 먹고 펑퍼짐한 나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뻐서, 한 마디로 전의를 상실한 거지 뭐. 그런 그녀에게 나는 인테리어 바꾸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쓰는 식탁 같은 테이블 치우고 먼지를 두텁게 덮어쓰고 있는 빛바랜 조화를 버리라고, 값비싼 소품이나 그림을 걸지는 못하더라도 꽃무늬 벽지는 걷어버리라고, 제발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텔레비전 치우고 넋 놓고 드라마 좀 보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 몇 번이나 말을 하기는 했다.

문제는 그때마다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고, 다음날이면 그걸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기야 맥주 한 잔이면 취하고 한 병이면 인사불성이 되고 마는 주량으로 술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었다. 그걸 타박하면 그녀는, 얘, 그래도 나 술 많이 는 거야. 하며 해설피 웃어보였다.

그러다 보니 빠리 이야기에서 술을 마실 때면 늘 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술 취한 그녀를 택시에 밀어 넣은 뒤 돌아가기 일쑤였다. 언니,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하면, 니가 있으니까 술 먹는 거야. 다른 땐 술 안 먹어. 했다.

커다란 통유리 옆 자리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며 술 마시기를 즐기는 나로선 빠리 이야기는 빵점짜리 술집이었다. 하지만 내가 빠리 이야기에 자주 갈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도 있었다.

통유리가 있는 술집에서는 내가 혼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고, 이내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무슨 일 있어? 하자 그녀는 나를 보고 벌쭉 웃기만 한다. 뭔 일이냐니까? 그녀는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죽었대. 죽어? 누가? 그녀는 다시 벌쭉 웃었다.

그 새끼 말이야. 뭐, 전남편? 흐흥, 그래, 나의 전남편, 그리고 애들의 아버지. 잘 됐네, 뭘. 흐흥, 그래서 나 혼자 축하주 마시면서 이렇게 웃고 있잖니. 웃고 있는 걸 보란 듯이 다시 흐흥 웃는다. 어설프다. 나도 한 잔 줘, 축하주. 잔을 부딪치고 들이켰다. 밍밍하다. 뚜껑을 따고 족히 한 시간은 넘게 저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맞아, 축하를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축하를 해줘야지. 어떡하다 죽었대? 뭐, 뒷골목에서 칼을 맞은 모양인데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대. 직원들한테 심하게 해서 원한을 샀는지, 돈 냄새를 맡고 한국 사람을 노리고 있던 건달들한테 당한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대. <다음호에 이어짐>